[삶의 여백]라딘(Ladin)족의 정신
[삶의 여백]라딘(Ladin)족의 정신
  • 경기신문
  • 승인 2019.06.11 19:05
  • 댓글 0
  •   17면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용대 수필가
김용대 수필가

 

국가가 성립되려면 국민과 영토와 주권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그 기본인 3요소를 무시하고 자기들 임의로 국가라고 주장하는 곳이 지구상에 4백여 곳이나 있다. 이들이 주장하는 가칭 국가들의 국민은 수십 명이 대부분이고, 시설은 영토로 삼을 수 없게 빈약해 어디서도 국가로 공인받지 못한다.

그 터무니없는 곳은 카리브 해의 레돈다 왕국, 영국 남쪽 바다의 시랜드 공국, 미국 플로리다주의 콘치 공화국, 미국 네바다주 사막 지역의 몰로시아 공화국, 리투아니아 수도 빌니우스 외곽의 우주피스 공화국,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프리타운 크리스티아니아, 벨기에 사람이 남극에 세운 플란드렌시스 대공국, 호주 서부의 농장주가 세운 헛리버 공국, 캐나다의 노바스코샤주에 속한 섬 끝에 세운 아우터발도니아 공국, 영국의 코미디언이 자기 아파트에 세운 러블리 왕국이다. 또 인구 7명의 오스티네시아와 46명의 투체어스 왕국, 인구가 238명이나 되는 아에리카 제국, 370명의 세보르가 공국, 그런가하면 2명뿐인 아틀란티움 제국, 4명의 몰로시아 공화국 등도 있다. 이들은 주장만 하지 이목을 끌만한 특징은 없다.

그러나 국가로 주장하지 않으면서도 특별한 지역이 있다. 이탈리아의 돌로미티는 오스트리아와 국경 사이의 알프스산맥 아래에 있어 알프스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대자연의 풍광을 자랑한다. 돌로미티의 어원은 ‘돌로마이트’라는 백운암으로 결정질의 칼슘과 마그네슘, 탄산염으로 이루어진 퇴적 탄산염암이다.

돌로미티는 3천m가 넘는 18개의 봉우리와 41개의 빙하, 그리고 드넓은 초원과 계곡이 있어서 유네스코 세계자연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겨울에는 주변이 모두 스키장으로 변하고, 여름에는 드넓은 초원에 야생화가 만발해 고산지대의 트래킹을 즐기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곳이다.

이탈리아의 복잡한 역사 속에서도 이 지역에는 소수 민족인 라딘(Ladin)족이 오랜 세월을 지나도 굳건히 종족을 유지해 오고 있다. 인구 3만9천여 명으로 무려 2천년 동안 자기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살아왔다. 이탈리아와 독일 사이에 있으면서 끈질기게 민족을 유지해 온 것은 실용이 생존 비결이었다. 높은 바위산으로 둘러싸인 험지에 살면서도 수입원이 관광업이어서 독일어와 이탈리아어 그리고 영어에 능하다. 자기들 언어인 라딘어 외에 다른 언어에 배타적이었다면 다른 민족에 흡수되거나 생존을 위해 뿔뿔이 흩어져 세상을 떠돌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생존을 위해 다른 언어와 문화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들은 근면 성실하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적당히 살다가는 추위와 굶주림에 무너지기 십상이었을 텐데 일곱 마을 지도자들이 힘을 합쳐 혹독한 환경을 이겨냈다. 그 중심에 민족적 자긍심이 있다. 이들은 신문과 TV 프로그램을 모국어인 라딘어로 제작하고, 전통 음식을 먹고 전통 복장을 즐겨 입는다.

우리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게 불안하던 예전의 남북 관계에서 다소 해소됐다고는 하나, 진정한 평화 무드는 아직도 멀다. 북한은 자신들의 유일한 생존수단인 핵무기를 버릴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이에 금강산 관광과 개성 공단 문도 굳게 닫혀있다. 백의민족인 우리는 예로부터 마음이 선량하고 순진해 남을 헤칠 줄 모른다고 했다. 그런데 한 민족이 70여년을 적으로 대치하며 불안한 삶을 하고 있으니 심히 안타까운 일이다.

과거에 우리는 단일민족에다 삼면이 바다요 산 좋고 물이 맑아 금수강산이라며 스스로 자랑했다. 그러나 주어진 여건에 자랑만 할 일은 아니다. 험준한 산악에서 2천년 동안 언어와 문화를 지키며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온 소수민족인 라딘족의 정신을 새겨보아야 할 일이다. 남과 북이 적대감을 버리고 협력해 우리 고유의 끈기와 창의성을 앞세워 노력한다면 획기적으로 발전해 세계 사람들이 부러워할 것이 아닌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