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농경에 뿌리가 있다
[생활에세이]농경에 뿌리가 있다
  • 경기신문
  • 승인 2019.06.11 19:09
  • 댓글 0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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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인숙 시인
한인숙 시인

 

6월 들판이 푸른 물결과 황금물결로 일렁인다. 보리가 심겨진 논과 밭은 황금색으로 누렇게 익어 수확을 앞두고 있고 벼농사를 주로 하는 논은 막바지 모내기 작업이 한창이다. 공동 못자리로 모를 키우고 기계로 옮겨 심다보니 논 몇 마지기 모내기도 오전 한나절이면 충분하다. 농기구를 운전하는 사람과 모판을 날라주는 사람 하나면 모내기가 거뜬하다.

못줄을 띄워놓고 눈금 몇 자리씩 차지하고 서서 줄잡이의 소리에 맞춰 모를 심고 못줄을 넘기던 풍경과는 사뭇 다르다. 모든 것을 다 수작업으로 하다 보니 품앗이를 통해 이웃과 함께 했다. 가급적 서로의 일정이 겹치지 않도록 의논해 모내기를 했다.

우리는 하늘바라기 천수답이었다. 비가 와야 모를 심을 수 있는 땅이다. 더군다나 보리수확을 마친 후 모내기를 했기 때문에 물이 한해 농사를 좌우한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비가 넉넉히 와 주면이야 걱정 없겠지만 비 한 방울 없는 마른하늘은 야속하기만 했다. 못자리의 모는 하루가 다르게 자라고 논에서는 흙먼지만 날리니 농부의 마음을 타들어갈 수밖에 없다. 도랑에서 졸졸 흐르는 물을 잡기위해 매일 매일이 물꼬 전쟁이고 평소에 형, 아우하며 친하게 지내던 이웃도 물 앞에서는 양보가 없었다.

그러다 비라도 오면 온 식구가 들로 나섰다. 집집마다 자기 집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손을 구할 수가 없어 식구들이 나섰다. 아버지는 일소를 앞세워 써레질을 하고 어머니와 우리들은 모를 쪘다. 웃자란 모는 뿌리가 엉켜 잘 뽑히지도 않고 힘 조절을 잘 못하면 끊어지기 일쑤니 조심하라고 성화를 하셨지만 힘만 들뿐 제대로 못했다.

거머리는 왜 이리 많은 지 따끔해서 보면 정강이에 붙어있고 팔에 붙어서 피를 빨고 있다. 들에 가면 뱀도 있고 개구리도 있고 물것들도 많았지만 거머리가 제일 무섭고 싫었다.

그렇게 우여곡절 끝에 모내기가 끝나면 논두렁에 콩을 심었다. 다랑이 논이라 몇날며칠 콩을 심었다. 꿩이나 까치가 콩 심는 것을 보면 영락없이 빼먹는다. 지금은 빨간 약이 있어 발라 심으면 새가 건드리지 않는데 예전에는 콩 빼간 자리를 몇 번 씩 다시 때우곤 했다.

절반의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지만 먼동이 트면 들에 나간 아버지는 어둠이 대문까지 들어찰 때 쇠꼴을 한 바소구리 지고 들어오셨고 우리는 모깃불을 놓고 마당에 멍석을 펴고 둘러 앉아 저녁을 먹곤 했다. 어둠 속에서 반짝이는 반딧불이를 잡아 병에 담아 놓고 그 아래서 이슬이 내릴 때까지 놀던 생각도 난다.

추억이 된 유년의 일들이 그립고 새로운 것을 보면 내 뿌리는 농경에 있다. 농사일 거드는 것이 힘들고 싫어서 시골로는 절대 시집 안 가겠다고 다짐했는데 들녘을 바라보고 있으면 편안하고 즐겁다.

모내기하는 모습도 정겹고 잘 가꾸어진 농작물을 보면 주인이 얼마나 부지런하면 저렇게 잘 가꾸었을까 생각하게 된다. 요즘은 수로 시설이 잘 되어 물 걱정이 없으니 모든 과정이 수월하다. 대부분의 공정을 기계로 함은 물론 병충해 예방까지 헬기나 드론을 이용하니 얼마나 농사짓기가 편리한가.

황금빛으로 일렁이는 보리밭을 본다. 키보다 높은 보릿단을 지개 작대기에 의지해 들어 올리던 아버지의 모습이 들판에 있다. 평생을 땅에 의지해 살면서 흙처럼 정직한 것이 없다던 말씀이 아직도 메아리도 들리는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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