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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장

/이승훈

담장은 돌들로 되었다. 돌들이 사금파리처럼 반짝이는 봄날, 담장 아래로 걸어간다. 햇살이 눈부시다. 담장 너머엔 집, 담장 이쪽엔 풀이 있다. 풀을 밟고 간다. 바다로 간다. 봄날은 길다. 담장도 길다. 돌들도 길다. 사람 없는 길, 새도 없는 길, 집도 넘겨다 보면서 간다. “허허 걸어가는군” 봄햇살 모자에 받고 오른쪽 다리 저으며 가는 노인, 왜 손을 들고 가는가?

 

 

 

 

 

이승훈 시인이 배치한 풍경은 단순하다. 담장과 햇살, 노인의 걸음과 풀이 전부다. 하지만 이 배치는 그것의 재현으로 표상되지 않는다. 미세하게 움직이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어긋나면서 의미를 작동시킨다. 사건 자체는 특별하지 않지만 그것의 나타나고 있음 자체가 세계의 감각적인 균열이자 효과라는 것이다. 노인이 담장 아래를 걸어간다. 담장은 야트막하고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햇살은 담장에 내려앉기도 하며 혹은 저만치서 따로 뒹굴고 있다. 개가 짖을 때도 있고 바람이 낡은 장삼을 스칠 때도 있다. 노인은 걸어가며 담장 너머를 보는데, 거기에는 집이 있다. 노인이 걷는 길에 풀이 불쑥 자란 것처럼 ‘집’도 그곳에 솟아 있다. 완전한 침묵에 가까운, 캔버스 같은 백색. 사람이 있던 듯하지만 그것은 나뭇가지가 출렁거린 자리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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