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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100년 전 그날, 이어 갈 100년

 

 

 

뻐꾸기 소리에서 아카시아 향기가 난다. 이 길을 달리며 목이 터져라 만세를 불렀을 선열들의 마음이 되어본다. 오랜만에 붓을 잡으니 그 날의 풍경이 눈에 스친다. 시화전을 앞두고 다른 해에는 액자나 스탠드 등을 전문 제작 업체에 주문했으나 올 해는 좀 더 가치 있는 전시가 되기 위해 평소보다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생각이었다.

3·1운동 100주년을 기념하고자 우리 고장의 만세운동 유적지 부근에서 행사를 개최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 그 일환으로 우리는 시화전을 기획했다. 요즘 환경을 생각해 마트에 갈 때도 가방을 준비해야 한다는 점에 착안, 에코백으로 결정하고 함께 모여 작품을 만들기로 했다.

조금 서툴러도 함께하는 시간이 좋다. 작품을 만들며 회원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할 수 있어 좋고 완성된 작품을 놓고 서로 잘 했다고 칭찬하는 마음 또한 아름답다. 나가서 먹는 점심시간도 아까워 비빔국수를 해 먹고 잠시 쉴 참에 마시는 커피도 평소보다 향이 더 진한 것 같다. 하얀 에코백에서 태극기가 날리고, 들꽃이 피고 나비가 날고 기도하는 손이 회원들의 싯귀를 적었다.

부스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구경이나 하려던 사람들이 호기심에 가득 찬 눈으로 이것저것 묻더니 처음 해 본다며 서툴게 시작을 하지만 완성 된 가방을 들고 멋있게 포즈를 취하며 사진을 찍는 모습이 그림이 된다.

얼굴 가득 주름을 잡으며 웃으시는 어르신도 쑥스러워 하시면서도 예쁜 색을 찾아 어린이처럼 순진한 얼굴이 되신다. 한 동안 부스 안이 복작복작하면서 안내도하고 전시 해 놓은 작품에 대해 설명을 하면서 몇 시간을 보내다 보니 벌써 가방이 동이 났다.

그러나 준비물을 챙기는 과정에서 크나큰 실수를 했다. ‘독립선언문’ 쓰기도 있었는데 정작 중요한 ‘독립선언문’을 빠뜨린 것이었다. 직감적으로 PC방을 떠올렸으나 주위에 PC방이 보이지 않았다. 읍내까지 가려면 시간이 너무 걸리고 도서관도 보이지 않았고 가까운 보건소도 휴일이었다. 속을 태우면서 어찌할 바를 모르는데 행정복지센터에 주차를 하고 오는 사람이 당직 근무자가 있는 것 같다고 했다.

뜻이 있는 곳에 길은 항상 있게 마련이다. 행정복지센터로 달렸다. 도움이 필요할 때는 벨을 누르라는 안내 문구를 보면서 힘 있게 벨을 누른다. 얼마 후 직원이 문을 열어주고 안으로 들어가 사정을 얘기했더니 흔쾌히 대답하고 바로 ‘독립선언문’을 출력해준다. 하마터면 빈껍데기 전시가 될 뻔했던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답례로 에코백을 드리니 오히려 좋은 선물을 받았다며 고마워한다. 다시 한 번 그 직원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가평군 북면 목동리에서 훈장과 이장을 하던 이규봉 선생이 고종 인산을 보러 서울로 갔다가 3·1운동을 보고 독립선언서와 독립신문을 옷 속에 감춘 채 사흘을 꼬박 걸어 가평에 도착해 독립 만세운동을 계획했다. 3월 15일을 거사일로 정하고 독립선언서와 격문을 붙이고 태극기 1800여개를 제작했다. 3월 15일 주민들을 동원, 면사무소까지 진출해 만세시위를 벌였다. 28회에 걸쳐 3천200명 동원, 사망자23, 부상50 투옥25, 신분과 지위 성별을 초월한 주민들의 일치된 독립 의지를 천명했다.

우리도 작으나마 그 날의 만세운동이 1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의 재현이 아닌 역사를 전하고 미래를 창조하는 일이라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뿌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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