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道, 전국체전 18連覇 신화 ‘위대한 도전’

 

 

 

민족 얼 담긴 ‘전국체전 100년’ 돌아보며

국내 최대 종합스포츠대회인 전국체육대회가 올해로 100회째를 맞는다. 대한체육회는 올해 100회 대회를 기념해 대한민국의 수도인 서울특별시에서 100회 대회를 개최한다. 올해 대회는 오는 10월 4일부터 10일까지 7일 동안 서울특별시 일원에서 개최된다. 제100회 전국체육대회는 개최지인 서울시 못지 않게 ‘체육웅도’ 경기도에게 특별한 의미가 있다. 제100회 전국체육대회를 앞두고 대회의 역사와 경기도가 갖고 있는 전국체육대회의 의미를 알아본다.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 창설
11월 전조선야구대회가 전국체전 기원
종목 등 추가… 1937년 대회 규모 커져

항일 의지 강해 축구는 항상 일본에 이겨
일본, 1938년 조선체육회 강제 해산 탄압
1945년 해방후 12월 26회 전국체전 열려

1957년부터 부산 등 지방서 대회 개최

道, 1977년부터 2連覇… 서울과 라이벌
82회 충남에 우승 내준 후 정상 탈환

99회까지 17연속 최다연속 종합우승
올해 100회 맞아 서울서 10월에 개최
체육웅도 걸맞은 18連覇 목표 세워


■ 전국체육대회의 역사

전국체육대회는 1920년 7월 13일 조선체육회가 창설된 뒤 그해 11월 배재고보 운동장에서 열린 제1회 전조선야구대회를 기원으로 삼는다.

대회 초기에는 종합대회의 형태를 갖추지 못해 단일 종목별 경기대회를 차례로 개최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1925년 성동원두(서울 동쪽의 넓은 들판)에 경성운동장(현 동대문운동장)이 세워지고 조선신관경기대회라는 종합경기대회가 열렸지만 이는 일본인에 의해 준비되고 운영돼 우리 민족의 종합체육대회라고 할 순 없다.

한민족 종합체육대회의 효시는 1934년 조선체육회 창립 15주년을 기념해 개최된 전조선종합경기대회로 보는 게 옳다.

이 대회는 축구, 야구, 정구, 농구, 육상 대 5개 종목이 진행됐고 경기장도 경성운동장 외에 욱천운동장(현 선린중 자리), 배재고보운동장, 철도운동장 등에서 치러졌다. 이 대회는 기록상 제15회 전조선종합경기대회가 된다.

이후 1935년 유도, 씨름, 검도, 역도가 추가됐고 1936년에는 빙상, 권투, 탁구, 1937년에는 배구가 추가되는 등 대회 규모가 커졌다.

계속된 대회 성장으로 우리나라 선수들의 경기 수준도 나날이 햐상됐고 고(故) 손기정 선생이 마라톤에서 금메달을 딴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을 전후해 전조선종합경기대회는 절정에 오른다.

그 시기 체육계에서는 일제의 탄압에 항거하며 일본을 상대로한 축구, 육상, 탁구, 럭비 등에서 ‘항일’이라는 대의의 정신적 승리를 거두기도 했다. 특히 축구는 일본에 항상 승리했다.

하지만 일제의 새로운 탄압정책으로 1938년 조선체육회가 강제 해산당하고 전조선경기대회도 제18회 대회를 끝으로 중단됐다.

1945년 8월 15일 광복과 함께 그해 11월 조선체육대회가 부활됐고 12월 자유해방 경북 전국종합경기대회인 제26회 전국체육대회가 개최된다.

당시 경기종목은 육상, 축구, 야구, 배구, 정구, 럭비, 풋볼, 탁구, 자전거, 승마, 농구 등 10개 종목이었으며 이듬해 1월에는 빙상대회도 부활했다. 이 대회가 오늘의 동계빙상 및 동계스키대회로 발전됐다.

1946년부터는 각 경기단체들의 조직이 정비되면서 활동도 본격화 됐다.

1947년 6월 대한올림픽위원회의 발족을 앞두고 열린 제27회 대회는 조선올림픽대회로 불렸고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경축하는 제29회 대회부터 전국체육대회라는 명칭과 함께 시·도 대항전을 시행하게 됐다.

전국체육대회의 틀이 잡혀갈 무렵 1950년 한국전쟁 발발로 제31회 대회가 열리지 못했고 이듬해 전화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광주광역시에서 제32회 대회를 개최했다.

1953년 휴전이 되고 사회가 차츰 안정되면서 전국체육대회도 질적으로 충실해지고 양적으로도 대형화됐다.

1952년 제33회 대회부터 제37회 대회까지 서울에서만 개최됐던 전국체육대회를 중앙과 지방의 균등한 체육발전을 도모한다는 취지 아래 제38회(1957년) 부산, 제41회(1960년) 대전, 제43회(1962년) 대구, 제45회(1964년) 인천, 제46회(1965년) 광주 등 지방도시에서 열어 스포츠의 전국적인 보급도 본격화 됐다.

 

 

 

 


■ 경기도의 전국체육대회 의미

경기도가 전국체육대회에서 입상한 것은 1955년 제36회 대회 때 종합 3위에 오른 것이었다.

이후 2, 3위권을 맴돌던 경기도는 1977년 제58회 대회부터 2년 연속 종합우승을 차지하며 서울시와 라이벌 구도를 형성했다.

1980년 제61회 대회에서 종합우승을 차지한 이후 1981년 인천이 직할시로 승격되며 경기도와 분리된 이후 우승권에서 다소 멀어졌던 경기도는 1986년 제67회 대회 때 다시 정상을 되찾았고 이후 서울시와 우승을 주고받았다.

제77회 대회부터 81회 대회까지 종합우승을 독식했던 경기도는 2001년 제82회 대회 때 충남에 종합우승을 내준 이후 전력을 재정비해 2002년 제83회 대회부터 다시 정상의 자리를 지키고 있다.

지난 해 전북 일원에서 열린 제99회 전국체유대회에서 종합우승 17연패를 달성하며 이미 서울시가 가지고 있던 역대 최대 연속 종합우승(16연패·1952년 제33회~1967년 제48회) 기록을 넘어선 경기도는 이번 전국체육대회에서 진정한 체육웅도 임을 입증하려고 한다.

경기도는 전국체육대회 최대 라이벌인 서울시 한복판에서 종합우승기를 들어올려 진정한 체육웅도임을 확인하겠다고 벼르고 있다.

또 경기도는 최다 연속 종합우승 기록을 이어감과 동시에 서울시가 보유하고 있는 역대 최다 우승(33회) 기록을 넘어서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에서 반드시 종합우승을 이어가야만 한다.

경기도는 대한체육회가 종합성적을 집계한 1952년 이후 총 30회 우승했다. 이는 서울시보다 3회가 적인 수치다.

1950~60년대 어수선한 사회분위기 속에서도 꾸준히 이어진 전국체육대회는 서울시가 우승을 독식하다시피 했기에 총 우승횟수도 많은 게 사실이지만 역사적인 기록으로 서울시가 경기도보다 종합우승 횟수가 많은 것은 사실이다.

올해 서울에서 열리는 전국체육대회에서 경기도가 우승을 하지 못하더라도 총 우승횟수를 늘릴 기회는 있지만 체육웅도의 명성에 걸맞는 기록을 남기기 위해서라도 이번 대회 종합우승은 경기도의 몫이어야 한다.

서울시도 이번 대회에서 경기도의 종합우승 저지를 위해 총력전을 펼칠 것으로 예상돼 그 어느 대회보다 박진감 넘치는 명승부가 예상된다.

/정민수기자 jms@

/사진=경기도체육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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