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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시론]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 만세!!

 

 

 

조선 초 황희(1363~1452)정승은 태조에서 세종까지 4명의 임금을 모셨고 영의정만 18년을 했다. 원칙과 소신을 견지하면서도 관용의 리더십을 발휘한 것으로 유명해 전해지는 일화도 많다. 하루는 여종 둘이 싸우다가 한 명이 황희정승에게 달려와 상대방을 힐난했다. 황희정승이 “네 말이 옳다”고 하자, 싸우던 다른 여종이 자신은 억울하다며 상대방을 탓했다. 그러자 황희정승은 “네 말이 옳다”고 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조카가 어찌 제대로 판정해주지 않느냐고 하자 “네 말도 옳구나” 했다는 이야기. 훗날 율곡 이이는 주자의 군자소인론을 따라 붕당론(朋黨論)을 폈으나, 심의겸과 김효원의 시비로 인한 동인서인의 당파싸움 조짐이 보이자 양시양비론(兩是兩非論)으로 바꾸어 보합조제론(保合調劑論)을 제시했다. 비생산적 논쟁을 끝내고 함께 조정에 나와 보다 막중한 국사와 민생문제에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이런 정신은 나중에 영조의 탕평책에서도 확인된다. 물론 조선시대에 비생산적 대립이 많아서 이런 방안들이 나왔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 장기간의 국회파행과 여야 대립을 보면 이런 선현들의 지혜가 더욱 필요해 보인다.



- 양시양비론은 흑백논리의 불합리를 지적한 것

국회파행은 공직선거법, 공수처법, 검경수사권조정 관련법 등의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야기된 한국당과 나머지 4당의 대립으로 시작됐다. 얼마 전 한국당이 청와대 책임을 거론하자 청와대는 “왜 국회파행의 책임을 청와대에 전가하느냐?”고 발끈했다. 한국당은 문재인 대통령이 5·18기념사에서 “독재자의 후예가 아니라면 5·18을 다르게 볼 수 없다”고 한 것, 현충일 추념사에서 국군의 뿌리 중 김원봉을 언급한 것, 6·10민주항쟁 기념사에서 ‘좋은 말을 골라 사용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미덕’이라고 한 것 등이 모두 자신들을 공격한 것으로 여긴다. 또 한국당과 민주당에 대한 해산 청원에 대해 강기정 정무수석이 “국민들이 내년 4월 총선까지 기다리기 답답해하는 것”이라고 답한 것, 국회의원 소환제도를 신설해 달라는 청원에 대해 복기왕 정무비서관이 “유독 국회의원에 대해서만 소환할 제도적 장치가 없다는 것은 누가 봐도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렵다”고 한 답변도 모두 대통령의 뜻이라고 생각한다.

여야간 국회정상화 협의가 진행되는 와중에 나온 대통령과 청와대의 이런 발언들이 국회파행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일정부분 해결을 어렵게 만든 요인임을 부정할 수도 없다. 패스트트랙 지정으로 만들어진 ‘4+1구도’에 존폐를 걸고 대항해 온 한국당은 대통령이 이 구도의 해체에 도움을 주기는커녕 반대편에 서서 공격하는 것을 태연히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다.

- 국회파행은 공동책임, 각자 사과와 주어진 역할을 해야

양시양비론은 둘 모두 맞고, 둘 모두 틀리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 명은 전적으로 맞고, 한 명은 전부 틀리다는 흑백논리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말이다. 실제로 세상의 모든 일이 하나의 원인에 의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 이쪽과 저쪽, 안과 밖의 여러 원인이 합쳐져 사건을 만든다. 최근 국회파행은 패스트트랙 지정에서 발생한 것이지만, 그 패스트트랙은 한국당이 각 사안에 강경 반대하면서 촉발된 것이다. 거기에 여야의 협상력 부재와 청와대의 ‘말리는 시누이’ 태도가 촉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국민이 보기에 청와대와 여야 정치권은 이 사태를 즐기는 것으로 보인다. 누구도 이 구도를 타파할 시도를 하지 않고 오로지 상대방의 항복을 요구하고 있으니 말이다. 해결방법은 간단하다. 여야 모두 ‘국민은 내편’이라는 허상을 버려야 한다. 양시양비론, 나에게도 잘못이 있다고 인정하는 것이다. 서로 잘못을 인정한다면 조금 더 양보한다고 비난받을 일은 없다. 어차피 국회가 정상화되어도 의견대립은 여전할 것이다. 그래서 각자 할 수 있는 일을 해야 한다. 패스트트랙 안건도 표결에 부치고, 경제청문회도 열고, 추경논의와 표결도 진행하고, 밀린 입법도 추진해야 한다. 서로 비난만 하고 아무 것도 진행되지 않으니 국민이 답답해하는 것이다. 물론 여야의 대립과 국회파행은 정치권만의 탓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국민의식의 투영이라고 봐야 한다. 국민과 정치권 모두 “내 탓이요”운동을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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