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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이별의 질서

이별의 질서

/서안나

간절한 얼굴을 눕히면 기다리는 입술이 된다

한 사내가 한 여자를 큰물처럼 다녀갔다 악양에선 강물이 이별 쪽으로 수심이 깊다 잠시 네 이름쯤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피가 당기는 인연은 적막하다

내가 당신을 모르는 것은 아직 내가 나를 모르기 때문이다 슬픈 육체가 육체를 끌어당기던 그 여름 당신의 등은 짚어낼 수 없는 비밀로 깊다 꽃은 너무 멀리 피어 서러움은 뿌리 쪽에 가깝다

사랑을 통과한 나는 물 위를 미끄러지듯 달리던 비애 우리는 어렵게 만나고 쉽게 헤어진다 내가 놓아 보낸 물결 천천히 밀려드는 이별의 질서 나는 당신을 쉽게 놓아 보내지 못한다 강물에 손을 담그면 당신의 흰 무릎뼈가 만져진다

 

 

 

 

봄은 연분홍 화신(花信)과 함께 남쪽에서 온다. 3월 하순 제주를 점령한 벚꽃은 섬진강과 낙동강을 거슬러 올라 마침내 4월 중순에는 춘천에까지 당도하여 활활 불타오른다. 봄꽃이 피면 사랑도 따라서 핀다. 나비와 새들이 어지러이 날아들고 바람은 간드러지게 살랑거린다. 바람의 애무에, 메말랐던 나뭇가지는 촉촉하니 물이 오르고 대지는 연초록으로 배경색을 바꾼다.이 아름다운 사랑의 계절에 이별이라니… 섬진강 평사리, 악양의 사내는 큰물처럼 여자를 다녀갔다. 여자의 사랑은 그래서 이별 쪽으로 자꾸 수심이 깊다. 떠나는 사내의 비밀한 심사를 알 길 없어 여자의 설움은 뿌리에까지 스민다.결국 바다로 흘러가야 하는 섬진강의 물결처럼 사랑도 사내도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흘려보내야 하리라. 하지만, 아무리 애써 마음먹어 보아도, 사랑하였으므로, 진정 사모하였으므로, 끝내 강물처럼 흘려보내 수는 없다. 여자의 심연에는 지금도 유적처럼, 유골처럼 당신이 남아 있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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