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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인간·자연의 조화 꿈꿨던 미래 비디오 풍경

세계 각국의 음악·춤 보여주는
‘TV정원’ 속 ‘글로벌 그루브’ 작품
소통 매개체로 본 TV, 유튜브 연상

‘찰리 채플린’·‘밥 호프’ 통해
대중매체 파급효과와
미디어의 이미지 소비 통찰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 예견한
‘징기즈칸의 복권’ 눈여겨 볼 만

일렬로 늘어선 24개 어항과 모니터
기술·자연 공존 ‘TV물고기’ 눈길

 

 

 

‘백남준 미디어 ‘n’ 미데아’전 (백남준아트센터)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간의 일상과 삶의 지형을 완전히 바꿔 놓기에 동시에 보다 깊은 사유와 경계를 요구한다.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고 있는 지금 이 시기에 우리는 어떤 생각을 하며 삶을 영위하고 있을까?

백남준 아트센터는 오는 2020년 2월 20일까지 동시대 사회를 예민하게 포착하며 테크놀로지에 대한 예술적 개입으로 새로운 미래를 그리고 있는 ‘백남준 미디어 ‘n’ 미데아’ 전을 진행하고 있다.

 

 

 

 

백남준 작가는 “세계 모든 나라가 서로 케이블 TV로 연결될 때 일어날 수 있는 현상을 미리 예견한 일종의 상상적인 비디오 경관”이라며 ‘글로벌 그루브’(1973)를 소개했다.

‘글로벌 그루브’의 같은 영상 여러 개를 우거진 수풀과 함께 정원처럼 전시해둔 작품이 ‘TV정원’(1974)이다.

‘TV정원’은 의미뿐만 아니라 백 작가의 사유와 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어 오래도록 감상해야할 작품이다.

우선 ‘TV정원’ 속 ‘글로벌 그루브’는 세계 각국의 음악과 춤을 현란하게 보여준다.

이는 당시 냉전 시대였던 것을 고려해봤을 때, 문화적으로 상이했던 모든 국가들이 비언어적 표현으로 자신들의 노래와 춤을 선보이며, 국가의 경계를 무너뜨려 상호 공존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여기서 TV는 각국이 소통할 수 있는 매개체로도 볼 수 있는데, 이는 오늘날 유튜브를 연상케 해 백 작가의 날카로운 통찰력을 확인할 수 있다.

이러한 영상의 의미를 인지한 채 ‘TV정원’을 다시 바라보면, 자연 속 텔레비전들이 어딘지 이질적인 느낌을 줄 것이다.

 

 

 

 

그러나 백 작가는 테크놀로지를 대변하는 텔레비전이 자연환경과 하나의 유기체적 공간을 이뤄 생태계의 일부로서, 전체적으로 조화로운 미관을 의도하고 있다.

낯설기에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지만 이를 알고 들여다보면 지극한 조화를 발견할 수 있다.

이어 ‘달은 가장 오래된 TV’(1965-1976)는 ‘촛불TV’(1975/1999)와 같이 감상하면 좋다.

‘달은 가장 오래된 TV’는 12대의 텔레비전으로 초승달부터 보름달까지 달의 주기를 보여주고 있다.

이는 과거에 인간이 달을 바라보며 이야기하던 모습이 오늘날 TV를 바라보며 얘기하는 것과 같아, 달을 TV라 표현한 것이다.

 

 

 

 

또 ‘촛불TV’는 TV 케이스 안에 촛불이 들어있는 작품으로, 텔레비전이 새로운 문명의 시작이라는 것을 뜻한다.

두 작품을 감상하며 우리들의 일상을 떠올려보면, TV가 우리 삶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나란히 놓여 있는 ‘찰리 채플린’(2001)과 ‘밥 호프’(2001)를 같이 볼 수 있는데, 두 작품은 모두 대중 예술인을 소재로 대중매체의 파급효과와 미디어의 이미지 소비를 보여주고 있다.

특히 찰리 채플린은 자신의 영화를 통해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인간성의 회복’을 얘기해 왔었는데, 백 작가 역시 인간화된 기술 혹은 기술과 인간의 조화를 언급해 왔다.

작품이 찰리 채플린을 비디오 조각 로봇으로 형상화한 모습은 백 작가와 찰리 채플린의 깊은 사유를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징기즈칸의 복권’(1993) 역시 눈여겨 볼 만하다.

이는 동양과 서양을 잇는 실크로드가 광대역 전자 고속도로로 대체된 것을 형상화한 작품으로 당시 세계를 지배하던 징기즈칸이 잠수 헬멧, 철제 주유기, 플라스틱 등으로 로봇을 만들어 표현한 것이다.

 

 

 

 

자전거 뒤에 가득 실린 텔레비전 케이스는 광대역 통신을 이용한 소프트웨어의 발전을 통한 새로운 패러다임의 미래가 올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전시관에 걸려 있는 ‘백남준의 삶과 예술’에서 13번 그림 ‘일렉트로닉 수퍼 하이웨이: 백남준과 함께 한 여행’과 같이 보면 좀 더 이해하기가 쉬울 것이다.

마지막으로 ‘TV물고기(비디오 물고기)’(1975/1997)는 일렬로 늘어선 24개의 어항 뒤에 동일한 선상에서 24대의 모니터가 놓여 있는 작품이다.

영상 속 춤을 추고 있는 머스 커닝햄, 헤엄치고 있는 물고기, 날고 있는 비행기와 바로 그 앞에 위치한 어항 속 실제 물고기의 움직임은 묘한 기분을 들게 한다.

백 작가는 화면의 ‘생생함’과 자연의 ‘살아있음’을 같이 보여주며 기술과 자연의 공존을 의도했다.

다른 형상이지만 낯설지 않고 유사한 느낌이 든다면 ‘TV정원’의 여운이 남아서일 것이다.

 

 

 

 

전시관 내부 ‘백남준의 삶과 예술’에도 적혀 있지만 백 작가는 지난 1984년 ‘굿모닝 미스터 오웰’을 전 세계에 방송한 바 있다.

이는 조지오웰이 소설 ‘1984’를 통해 텔레비전을 이용한 빅브라더의 통제와 감시를 예견한 것에 대한 일종의 대답이었다.

결국 기술의 발전은 그것을 운용하는 인간의 내면적 성숙함이 뒤따라야 하는 것이다.

전시는 오늘날 우리에게 그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최인규기자 choiin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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