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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거지와 변호사

 

한 거부가 살았다. 그는 평생 먹을 것 아니 먹고 입을 것 아니 입어가면서 억만금을 모았다. 그런데 그에게는 후손이 없었다. 거부는 나이가 들어 병으로 자리에 눕게 되었다. 고약한 병은 현대의술로도 대처할 수가 없었다. 거부는 병실 안에서 자신이 죽은 뒤 재산을 물려줄 후계자를 찾았다. 그러나 마땅한 후손도 일가친척도 없었다. 며칠을 두고 궁리한 끝에 그는 먼 인척 하나를 기억해 내었다. 그는 그 인척에게 자신의 전 재산을 물려주기로 하고 유언장을 썼다. 그리고는 그의 전담 변호사를 불렀다.

“내 이제 죽음에 이르게 되었소, 변호사 양반?”

“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오. 지금부터 내가 하는 말을 잘 들으시오. 변호사 양반도 잘 알다시피 나는 부모형제도 없고, 내 재산을 물려받을 후손 하나도 없소. 그런데 간밤에 내가 곰곰 생각해 보니 언젠가 내 사돈팔촌격인 노인 하나가 부산 영도다리 아래서 밥 동냥을 하고 있다는 소리를 들었소. 내가 여기 그 거지의 이름과 내력을 쭉 써놓았소. 내가 죽으면 그를 찾아가 내 재산을 모두 물려주시오. 여기 유언장이 있소. 내 생전 첨 해보는 선행이니 어김없이 이행하도록 하시오”

“여부가 있겠습니까”

전담 변호사는 거부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나왔다. 그날 밤 거부는 그만 숨을 거두게 됐다. 그의 장례식을 치룬 며칠 뒤였다. 변호사는 그의 유언장을 들고서 부산 영도다리 밑을 찾아갔다. 수소문 끝에 변호사는 마침내 그 거지를 찾아내게 됐다. 다리 밑에서 깡통을 차고 앉은 늙은 거지를 보니 한 마디로 영락없는 거지였다. 피골은 상접하고 봉두난발에 해골 같은 얼굴에 사지는 말라 비틀어졌다. 입은 옷도 너덜너덜한 넝마에 몸에서는 고약한 냄새가 진동을 했다. 변호사는 코를 틀어막고 그 거지 노인에게 물었다.

“노인장 올해 연세가 어찌 되시오?”

“연세랄 것도 없어, 히히히. 방년 여든 둘이여, 히히히”

거지는 썩은 이빨을 드러내고 악취를 풍기며 웃었다.

“혹시 간밤에 돌아가신 억만장자 한 분을 아시오?”

그러자 거지 노인이 또 히히히 웃으며 단번에 답했다.

“아, 뉴스에 나온 그 억만장자? 내 사돈팔촌이여, 히히히”

그러자 변호사는 더 이상 말을 꺼내기가 심히 걱정스러웠다. 늙은 거지가 그 소리를 들으면 분명히 놀래자빠져 기절을 할 것 같았다. 그래서 변호사는 거지가 놀래지 않게 아주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어, 거지 어르신? 혹시나, 만약에 말입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사실이 아니라 가정입니다. 만약에 간밤에 돌아가신 그 사돈팔촌 억만장자께서, 만약에 말입니다. 그 많은 억만금을 다 준다면? 어디까지나 이건 만약이지만? 거지 어르신께선 그 돈을 어찌 하시겠습니까?”

그러자 그 늙은 거지가 서슴없이 대답하였다.

“아, 그렇다면 그 돈을 뚝 잘라서 반은 댁이 가지고 반은 날 주시오”

그 말은 들은 변호사가 어떻게나 놀랬던지 그만 심장마비에 걸려 죽어 버렸다.

그대, 그대 눈에 하찮게 보이는 인간일지라도 함부로 대하지 마라.

그 어쭙잖고 하찮은 인간이 그대 인생에 가장 큰 적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항상 명심할 지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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