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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와 이야기 사이, 당신의 이야기를 채워보세요

‘이야기 사이’(경기도미술관)

현대미술작가 7인과 1팀 작품
오는 8월 18일까지 전시

5만 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한
‘5만의 창, 미래의 벽’ 눈길

‘책·자연·생활·환상·기술’ 주제로
다양한 이야기를 담은 대화의 장
일부 작품 전시 취지와 안맞는 듯
이야기 사이 단절된 느낌 아쉬워

 

 

 

러시아의 철학자 미하일 바흐친은 우리의 삶이 ‘내 이야기와 남의 이야기가 서로 섞여가는 대화의 과정’이라고 보았다.

그의 말처럼 우리의 삶은 독백으로만 이뤄지지 않고 이야기와 이야기, 또 그 사이의 이야기를 채우며 살아간다.

그런데 가끔은 한 이야기가 모든 대화의 주제로 장식돼 그것만 기억에 남을 때가 있다.

 

 

 

 

경기도미술관은 인간의 근원적인 욕망이라는 이야기를 소재로 전시를 통해 대화의 장을 만든 ‘이야기 사이’를 오는 8월 18일까지 진행한다.

전시는 현대미술작가 7인과 1팀, 그리고 어린이벽화프로젝트에 함께했던 5만 명의 어린이들이 참여해, ‘책’이라는 주제어를 시작으로 ‘자연’, ‘생활’, ‘환상’, ‘기술’로 이어진다.

전시관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책’을 주제로 한 홍경택 작가의 ‘아트북 시리즈’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술의 경계가 과연 어디까지인지 깊은 고민을 하게 한다.

‘아트북 시리즈’는 설치작품으로 책 한권, 한권이 전달하는 이미지나 메시지를 작가가 단순한 형상으로 구성해 아크릴로 찍어낸 것이다.

 

 

 

 

깊은 고민은 여성의 신체를 상품화한 듯 노골적으로 표현한 책들에서 온다.

‘생활에 필요한 뜨개질’, ‘다함께 춤을 춰’, ‘아가씨의 에티켓’ 등이 그 경우이다.

위의 책들을 포함한 다수의 작품들은 외설적 이미지를 담아 작품 자체만을 보아도 부적절하다는 생각이 들게 한다.

물론 그것은 예술가만의 창작과 표현의 자유라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전시관 내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다수의 참여존을 설치해 놓은 것을 보았을 때 전시의 취지와도 맞아 보이지 않는다.

 

 

 

 

이어 나란히 위치한 홍 작가의 ‘서재-비둘기가 날 때’는 사실 굉장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형형색색의 책들과 평화를 상징하는 비둘기의 역동적인 모습은 밝고 긍정적인 이미지를 주지만, 동시에 죽음을 뜻하는 해골을 비롯해 한 아이의 표정은 어두운 분위기를 연출해 어딘지 모순적인 느낌을 들게 한다.

작품은 다양한 상징을 담은 요소들이 그려져 있어 관객들로 하여금 그것들의 대비와 반전의 매력을 느끼게 한다.

그러나 침울한 아이의 표정은 묘하게 ‘아트북 시리즈’의 일부 작품을 떠올리게 한다.

‘환상’을 주제로 한 공간에는 이이남 작가의 ‘신-몽유도원도’를 볼 수 있는데, 이 작품은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작가가 꿈꿔 온 몽유도원도의 이미지를 안견의 몽유도원도 속에 재현해 놓은 것이다.

작품은 8분이 넘는 분량으로 자연적인 풍광이 사계절의 변화와 함께 화려한 불빛을 뽐내는 도시의 풍경으로 변하는 내용이다.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도시의 모습은 다양한 빛을 내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그런데 그와 동시에 무분별하게 건물이 올라가며 다수의 타워 크레인이 곳곳에 놓여 있는 것은 왠지 모를 안타까운 느낌을 준다.

특히 타워 크레인이 하늘과 가까운 곳까지 위치해 있는 것은 마치 인간이 가진 욕망의 현주소를 나타내는 듯해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한다.

영상은 이 후에 눈이 내리며 모든 것이 사라지고 설경을 연출한다.

이 장면은 하얀 눈의 배경이 모든 것이 덧없다고 말하는 듯 또 다른 감동을 준다.

마지막으로 ‘기술’ 공간에 팀보이드의 ‘로봇 인 더 미러’ 역시 눈길을 끈다.

로봇과 인간의 큰 차이는 자의식의 유무일 것이다.

동물의 거울실험 보고 ‘로봇에도 자의식이 있을까’라는 물음으로 만들어진 이 작품은 로봇의 자의식이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킬 때 발현된다는 상상으로 만들어졌다.

작품은 약 5분 분량으로 중간까지 서로 비슷한 두 개의 로봇이 잘 작동되는 듯 대칭과 질서를 보인다.

그러나 영상의 사운드가 바뀌면서 로봇들은 서로의 물건을 빼앗으려 하고 심지어는 한 로봇이 다른 로봇의 플러그를 뽑아버리기 까지 한다.

마냥 흥미롭게만 바라볼 수 없는 이 영상은 로봇에 자의식이 있을까라는 의문으로 시작하지만, 언뜻 자의식을 가진 인간의 탐욕스러움과 잔혹함을 떠올리게 한다.

전시를 전부 관람한 수용자의 입장에서, 청소년들이 전시를 관람했다면 어땠을까?

이야기에 이야기를 덧붙여 가정한다면, 청소년들은 ‘책’ 공간에서 오래 머문 뒤, ‘자연의 이야기’에서 강요배 작가의 제주자연풍경회화와 ‘생활의 이야기’에서 소소하게 그려진 노석미 작가의 ‘먹이는 간소하게’를 들여다보고 ‘환상의 이야기’와 ‘기술의 이야기’에서 영상을 흥미롭게 시청했을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 머릿속에 맴도는 ‘아트북 시리즈’로 다시 가지 않았을까?

물론 ‘아트북 시리즈’의 외설적 이미지를 담은 일부 책들을 자세히 보았다면 말이다.

다양한 것을 보고 느끼게 하는 것은 좋지만, 그 속에 왜곡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는 무언가가 포함되는 것은 옳지 않다.

전시관에서 이야기와 이야기 사이가 단절된 느낌을 주는 이유는 아마 그 때문일 것이다.

/글·사진=최인규기자 choiin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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