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3.29 (금)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김구슬칼럼]미하이 에미네스쿠 세계시축제

 

루마니아 최고의 서정시인으로 칭송되는 미하이 에미네스쿠(Mihai Eminescu: 1850∼1889)를 기리는 제7회 ‘미하이 에미네스쿠 세계시축제’가 세계 20여 개국에서 50여 명의 시인이 모인 가운데 6월 17일부터 22일까지 루마니아의 크라이오바에서 개최됐다.

내게 루마니아는 멀고 낯선 나라, ‘25시’의 콘스탄틴 게오르규나 ‘성과 속’의 M. 엘리아데, 그리고 드라큘라의 모델 브란성(Bran Castle)과 전설적인 체조요정 코마네치의 나라였다. 그러나 이번 축제 내내 가는 곳마다 에미네스쿠의 숨결이 우리를 환영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루마니아인들이 그토록 에미네스쿠를 그리워하며 기리는 것은 그의 시가 루마니아 전통에 깊이 뿌리박고 있을 뿐 아니라 루마니아 민족 고유의 목소리를 통해 독자적인 민족의 정서를 노래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평가한다. 필자가 주목한 것은 그의 시가 삶과 죽음의 문제에 있어서 일원론적인 동양사상에 근접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의 가장 대표적인 시로 꼽히는 ‘샛별’은 그의 핵심적인 문학철학적 사유를 담고 있다.

그가 마침내 도착한 곳은/ 끝도 인식의 눈도 없고,/ 시간은 헛되이 빈 공간에서/ 출발을 시도하는 곳.

영원처럼 보였던 것도/ 결국 죽음이 지배한다,/ 모든 것은 죽기 위해 태어나고/ 태어나기 위해 죽기 때문에,

너희들은 좁은 세계에 살면서/ 덧없는 행복을 추구하지만, 난 나의 세계에서/ 불멸과 냉정을 느낀다.

- ‘샛별’ 일부(김성기 역, 부분 수정)

에미네스쿠 자신의 비극적 사랑을 토대로 황제의 공주와 하늘의 샛별 사이의 이룰 수 없는 사랑의 주제를 그리고 있는 이 시는 세계적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는 루마니아의 대표적 서정시다. 시작과 끝, 시간과 영원, 삶과 죽음이라는 이분법적 주제를 우주적 시각으로 통합하고 있는 이 시에서 평자들은 우파니샤드의 영향을 발견하기도 한다.

미하이 에미네스쿠 시축제는 이러한 에미네스쿠의 시적 주제를 확인해나가는 여정이었다. 그 중 가장 특별하고 의미 있는 것은 6월 20일 ‘시와 자유, 자유와 시’라는 주제로 기획한 ‘크라이오바 청소년보호소’에서의 시낭송이었다. 우리 모두 자아의 감옥 속에 있다는 한 시인의 말처럼 한 편의 시가 한 순간의 실수로 보호소에 수감돼 있는 청소년들에게 영혼의 자유와 시적 상상력을 촉발하여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하며 나는 한 편의 시를 낭송했다.



“인생은

또 다른 나를

가슴에 꼭 안고

처음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 때처럼

고요히 나를 응시하는 일이다

영혼의 한 구석을 깨닫게 하는 일이다”

- 김구슬, ‘인생은’ 일부



나는 그들이 처음 세상을 바라보았을 때의 경이의 순간을 기억하기를 그리고 가족, 세계와 일체화됐던 행복의 순간을 기억하기를 바랐다. 인생길에서 우리는 각자의 감옥 속에서 소외와 좌절을 경험하며 절망하기도 한다. 그럴 때일수록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처음 세상을 바라보았던 그 때처럼” 세상을 순진무구한 경이의 시선으로 바라보며 잃어버린 나를 발견하고 나를 회복하는 일이다.

처음 행사장에 들어섰을 때 마주친 그들의 눈빛은 매우 불안해 보였고 얼굴 표정은 어두웠다. 그러나 놀랍게도 시낭송 중간 중간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 나왔고 행사가 끝난 후 그들의 표정은 처음과 사뭇 달랐다. 퇴장하면서 밝은 미소를 지으며 손을 흔들기 시작했을 때 함께 한 시인들 역시 큰 박수로 화답했다. 가슴이 뜨거워지며 눈물이 솟구치려 했다. 이번 크라이오바 세계시축제에서 가장 감동적인 순간이었으며 시의 힘이 얼마나 큰 것인가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시작과 끝, 시간과 영원, 탄생과 죽음이 하나라고 믿었던 에미네스쿠의 시적 명제, “시는 모든 것이다”라는 조용한 속삭임이 그들의 마음을 뒤흔들었을 것이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