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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각을 맞추다

 

빨래가 바삭하다. 오랜만에 먼지 없는 투명한 날. 마당에 널어놓은 빨래가 햇빛에 올을 세웠다. 꼬들꼬들 마른 타월이 살갗에 닿는다. 해가 좋은 날 탁탁 털어 널면 속이 시원하고 잘 마른 빨래를 걷으면 뿌듯하다. 수분이 날아간 빨래처럼 마음도 가벼워진다.

빨래를 갠다. 먼저 옷의 상태를 확인한다. 옷장으로 들어가기 전 사전검열이다. 단추가 떨어졌는지, 실밥이 풀렸는지, 솔기가 터졌는지 살핀다. 미처 보지 못한 얼룩을 이때 발견한다. 간혹, 출처를 알 수 없는 얼룩을 조사할 때에는 고도의 추리력이 필요하다. 성분은 무엇이며 언제, 어디서 생겼는지 유추한다. 가끔, 아주 가끔 생각지 못한 단서를 잡기도 한다. 음식물이 아닌 경우에는 더욱 세밀한 역학조사가 들어가겠지.

옷을 갤 때에 중요한 것은 각을 맞추는 일이다. 이 일은 살짝 수학적인 감각이 필요하다. 소매와 소매가 맞닿고 솔기와 솔기가 수직이 돼야 한다. 솔기와 밑단이 만나는 곳은 90도로 각이 맞아야 한다. 다림질 하거나 접어서 옷장에 넣는 일의 반복에서 이 원칙은 중요하다.

각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옷이 있다. 부들부들한 재질의 옷감이다. 속옷이나 블라우스, 셔츠가 대개 이렇게 부드럽다. 관리 또한 까다롭다. 이런 옷들은 한 번 구입했다고 끝난 것이 아니다. 깨끗하게 입는 것은 물론 세탁과 보관도 섬세하게 신경 써야 한다.

이런 옷에 대한 관리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상대에 대한 사후관리다. 감정이 섬세한 상대와 각을 맞추려면 가끔은 분위기가 잔잔한 곳에 가야한다. 색다른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도 먹어주고 일 년에 한두 번 여행을 가면 더 좋다. 전시회나 콘서트에 가서 문화적인 갈증을 해소 시키면 더욱 가까운 사이가 된다. 쇼핑은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이런 문화 소비를 어느 정도 충족시켜 주어야 부드러운 재질을 오래 유지한다.

감정이 섬세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 비해 품위 유지비가 더 드는 이유도 그들이 갖고 있는 부드러운 체질 때문이다. 나긋나긋한 부드러움을 지속하려면 그 만큼 공이 든다. 그렇지 않으면 금방 거칠어져서 원형을 유지할 수 없다. 실크 블라우스를 세탁기에 돌리면 걸레가 되는 이치다.

예컨대 결혼 할 때 야들야들 했던 배우자가 뻣뻣하게 됐다면 그건 필시 상대 배우자의 탓일 가능성이 높다. 부드러움을 유지시키는 것은 관심과 정성, 그리고 그것을 실현시킬 약간의 돈이다. 자신의 각을 세우는 것은 그 다음이다.

사람과 사람의 각을 맞추는 것. 그것은 어려운 일이다. 각을 맞춘다는 것은 모서리와 모서리가 만나는 일. 하지만 잘 맞춘다면 사는 일이 좀 더 재미있다. 타인의 모서리에 나를 맞추는 것도, 내 모서리에 맞춰 상대를 깎아내는 것도 아니다. 각자의 각을 인정하는 것이 전제조건이다. 거기에서 상대와 나의 공통분모를 찾고 각도를 맞춰 포개지는 것이다.

각을 맞춰 포개질 때 보기 좋다. 양말은 양말끼리, 속옷은 속옷끼리. 자전거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시를 좋아하는 사람끼리. 한 종류로 정리 된 서랍을 볼 때 보기 좋은 것처럼 나와 동일한 곳을 보는 사람과 어울릴 때 사는 맛이 난다. 개인이 지닌 색은 다르지만 분명 같은 각으로 기울어진 무언가가 있을 테니까. 이것을 찾을 때 사는 것이 좀 더 쫄깃하고 감칠맛이 나지 않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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