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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집에서 대문을 열고 나가면 골목길이 나온다.

아스팔트가 깔려 있다. 좌우에 승용차들이 빽빽하게 서 있다. 그런데 이 아스팔트 길 위로 비만 오고 나면 어디서 나오는지 지렁이가 기어 나온다. 가끔은 징그러운 모습에 질겁할 때도 있다. 아마 비 온 다음 날이면 지렁이들도 갑갑한 흙 속을 탈출해 밝은 지상으로 나들이를 나오는 모양이다. 그런데 지렁이에겐 눈이 없다. 눈 없는 지렁이는 갈 바를 모른다. 그냥 앞만 보고 느리게 기어만 간다.

그러다가 개미나 곤충들의 공격을 받고 말라 죽는다. 그 위로 자동차들이 지나간다. 말라 죽은 지렁이의 흔적이 비 온 뒷면 흔하게 보인다.

나는 죽은 지렁이들이 의아하다. 왜 살던 곳에서 그냥저냥 살지 바깥세상으로 나들이를 나왔다가 저 지경이 될까?

하기야 흙 속에 묻혀 살자면 오죽 답답하랴. 답답하니까 환한 햇살이 비추는 땅 위로 기어 나왔겠지. 그러면서도 측은하다.

그러나 지렁이는 흙 속에 갇혀 살아야 한다. 그게 지렁이 세상이고 지렁이가 살아야 할 운명이다. 그걸 벗어나 별난 세상을 지향하다 보니 저 지경이 되는 것이다.

인생살이도 마찬가지다. 지렁이가 흙 속에 갇혀 살듯이 사람은 일생을 시름 속에 갇혀 살고 있다. 시름없는 인생이 어디 있고 근심 걱정 없는 세상살이가 어디 있으랴. 누구에게나 한 가지 걱정은 있다. 그래서 돈 많은 재벌도 높은 빌딩에서 몸을 던지고 한 몸에 세상의 총애를 다 받던 스타도 자살한다. 이렇듯 심심찮게 세상을 등지는 소식을 매스컴을 통해 들을 때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가 없다. 원시 세계에도 근심 걱정은 있었다. 동물들을 잡아서 처자식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일념으로 죽창을 들고 산야를 헤매던 원시인은 늘 야수와 맞서 싸워야 한다는 공포와 두려움을 안고 살았다. 그 위에 먹잇감은 늘 부족했다. 그들인들 어찌 세상살이가 만만했을까.

그렇다면 온갖 문명의 이기로 뒤덮인 오늘의 세상은 어떠한가? 한 달이 걸려서 가야 했던 먼 길을 현대인들은 한 시간이면 날아서 간다. 며칠이 걸리던 우편물도 E-메일 하나면 금방 연락이 닿는다. 편한 세상이고 복 받은 세상이다.

하지만 우리는 지금 그만큼 행복한가? 저마다 안달복달일까. 더 가지기 위해 더 높이 올라가기 위해 너나없이 눈에 불을 켜고 인생살이를 하고 있다. 문명이 발달한 만큼 짊어진 스트레스도 더 많아졌다.

지렁이가 흙 속에 묻혀 살듯이 우리 인간은 근심 걱정과 스트레스를 짊어지고 산다. 죽지 않는 한 그 두터운 스트레스 속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

더러는 그걸 벗어나기 위해 도피 생활을 하거나 도박이나 마약에 빠진다. 그 끝은 뻔하다. 어둠이 싫어 햇살 속에 기어 나와 말라 죽은 지렁이처럼 그들 역시 그렇게 말라 비틀어져 이승과 멀어져간다.

그러고 보면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따지고 보면 어둠이 싫어 햇살로 기어 나온 지렁이들과 근심 걱정에서 벗어나고자 몸부림치는 우리 인간과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다. 오호라, 슬픈지고. 짧은 인생이여. 어찌 슬프지 않으랴.

하늘이 흐리니 비가 올 것 같다. 그럼 또 어둠이 싫어 따가운 햇볕이 내리쬐는 땅 위로 기어 나오는 지렁이들이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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