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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詩集 빚을 갚으며

 

 

 

오래전 일이다. 1990년도 신춘문예 시조 당선하고도 한참 지난 후였다. 그때 심사를 故 박재삼 시인께서 해주셨기에 댁으로 한 번 찾아뵌 적이 있었다. 서울 묵동에 살고 계실 때였다, 선생님은 이제 갓 문단에 얼굴을 내민 햇병아리 시인을 만나기 위해 한 시간 전부터 집 앞 큰길에서 기다리고 계셨다. 시집을 여러 권 챙겨주시며 하시던 말씀이 생각난다.

“시인들이 시집을 보내주면 바로 엽서를 써요. 그래야 잊지를 않거든요. 긴말 안 쓰고 건필을 빈다, 그 정도지요”

나중에 알고 보니 박재삼 시인은 시집을 받으면 꼭 엽서를 쓴다는 것이 문단에서도 소문이 나 있었다. 그때 이후로 나는 전국에서 시인들의 시집을 받으면 문자 메시지나 전자우편으로 잘 받았다고 인사를 한다.

작년 10월 중순 경 나는 다섯 번째 시집을 출간했다. 그동안 전국에서 시집을 받기만 했기에 나도 시집을 우편 발송했다. 지금까지 받았던 시집 빚을 갚기 위해서다. 많은 선후배 시인들이 글을 보내왔다. 그분들의 메시지나 편지들을 고마운 마음에 몇 편 옮겨본다.

“선생님! 보내주신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잘 받아 읽었습니다. 상 하나 끌어안고 긴 밤 피 달이고도 열리지 않는 미답의 시가 어떤 것인지 잘 보여주는 시집입니다. 가슴에 낮달을 품는 사랑으로 저도 열심히 시조를 쓰겠습니다. 좋은 시집 상재를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광주에서 최양숙 올림”, “아름다운 시집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내심을 축하드립니다. 새, 길, 서설, 섬... 편편의 향기가 어찌 이리 깊은지요. 이후에도 가편들 많이 꽃피우소서. 윤채영 올림”

내 이름에 다 니은 자가 붙어서 그런지 몰라도 가끔 ‘진분순’으로 틀리게 써서 보낼 때가 있다, 이번에도 후배 시인과 선배 시인이 이름을 그렇게 써서 보내왔다.

“진분순 선생님 안녕하세요? 변현상입니다. 귀한 시집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를 받고 진작 인사를 드려야 도리인데 늦게야 읽습니다. 참 많이 송구합니다. 넓은 해량 바라오며 부디 올해도 강건하시고 문운 창창하시길 소망합니다. 변현상 올림”, “진분순 시인님! 보내주신 귀한 시조집 잘 읽었습니다. 잔잔한 시어와 정겨운 이야기가 들어있는 작품들을 기쁘게 접했습니다. 늘 건필하시고 문단에서 크게 성취하시길 기원합니다, -노창수 배상”,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그렇습니다. 선생님 멋진 시집 발간을 축하드립니다. 돌아볼 때 꽃이 되는 열정, 생각의 시간을 주셔서 고맙습니다. 광주에서 서연정 드림”,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시집을 받자 제 주변이 다 환해지는 기분입니다. 시인의 따뜻함이 고스란히 전해지네요. 귀한 시집 꽃 보듯 읽겠습니다. 노영임 드림”

많은 분의 격려와 축하의 글이 있었지만, 특히 잊히지 않는 분의 글이 있었다. “진순분 시인께, 평안하시지요? 새해 첫 달도 그믐이 가까운 날 시집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를 새겨 읽습니다. 가벼워/높이 날수록/바람결 꿈입니다//외로워/우는 삶도/목청 맑은 노래입니다//가슴에 낮달을 품는/그 사랑/허공입니다 그렇군요. ‘새’를 통해 시인은 꿈과 노래와 사랑을 그 허공에 한가득 풀어 놓았군요. 건강 건필하시라 당부하면서, 박시교 합장”, “진 시인 고향 들길 망초꽃처럼 하얗게 고운 시집 ‘돌아보면 다 꽃입니다’ 잘 받아 읽습니다.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그 향긋한 빛깔들이 울먹울먹 피어 있네요. 언제나 저 뒤쯤 조용히 서 있다가는 먼 사촌 같은 진 시인... 낮달처럼 마음에 담습니다. -유재영”

박시교 시인과 유재영 시인은 1970년대 등단으로 한국문단에서 명망이 높으신 분인데, 이토록 어리숙한 후배에게 감동적인 격려의 글귀를 보내주신 것이다. 시집 빚을 갚으면서 많은 시인의 축하 글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시를 쓰며 고심했던 날들이 떠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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