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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작가들의 ‘자유로운 발상’ 관객에 질문을 던지다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국립현대미술관)
5년 만에 과천관서 재개… 9월 15일까지

김지영·이은새·안성석 작가 등 9명 참여
한국사회 단면 투영 작품 등 총 53점 선봬
장르·소재 다양… 국내 미술 흐름 조망

 

 

 

젊음은 다소 미성숙할지라도 그 자체로 보고 느끼지 못하는 신선함과 넘치는 기백을 보여준다.

우리가 분야를 막론하고 젊은 세대를 주목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은 국내 미술 현장의 현 주소를 보여주는 ‘젊은모색 2019: 액체 유리 바다’ 전을 오는 9월 15일까지 진행한다.

전시는 9명의 청년작가들이 참여해 총 53점의 작품을 통해 편견에 사로잡힌 우리와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 또 그들만의 비관행적이고 비관념적인, 자유로운 성향을 거침없이 보여준다.

 

 

 

 

청년작가들은 공통적으로 현 사회에 시선을 고정한 채 일정 공간 내에서 관객들로 하여금 사유와 성찰의 기회를 제공한다.

특히 김지영 작가가 이를 잘 표현해냈는데, 김 작가가 구현한 공간에 들어서면 알 수 없는 묵직한 분위기가 감도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먼저 아직까지도 치유되지 않은 지난 2014년 세월호 참사 당시 진도 팽목항에서의 바람소리를 기록해 북소리로 치환한 ‘바람’은 김 작가의 고립된 공간 내에서 끊임없이 들리며 깊은 울림을 전한다.

여기에 한국 사회의 반복되는 재난들을 그려놓은 ‘파랑연작’과 지난날 비참한 현실을 마주하기 위해 애쓰던 사람들의 기도하는 손 모양 ‘이 짙은 어둠을 보라’는 ‘바람’과 함께 깊은 사유에 빠져들게 한다.

 

 

 

 

특히 ‘파랑연작’을 불꽃의 가장 뜨거운 순간인 파란색으로 표현한 점과 ‘이 짙은 어둠을 보라’의 기도하는 손 모양을 초가 흘러내리게 표현한 점은 그 당시의 현장감과 간절함, 그리고 애통함을 더 짙게 전달하고 있다.

사건의 참혹함을 견디며 만들었다는 김 작가의 작품들은 관람객들에게 아픈 과거를 회피하지 말고 마주해야한다고 전하고 있다.

또 이은새 작가와 안성석 작가 역시 이를 색다른 방식으로 제공하고 있다.

이 작가는 완성되지 않은 듯 보이는 다수의 회화작품을 전시해 놓았는데, 작품 속에서 눈 여겨 볼 점은 가족의 형태와 비교적 뚜렷한 그들의 눈이다.

우리가 대개 생각하는 가족의 구성은 핵가족 내지는 대가족으로 남과 여, 부부를 중심으로 떠올리곤 한다.

작품들은 전부 가족들을 그려놓았는데, 이 작가가 생각하는 가족은 그런 편견 속의 전형적인 가족이 아닌 한 부모 가정, 동성 부부, 또 마트에서 만난 사람들 등을 가리킨다.

이러한 작가의 날카로운 문제의식을 인지한 채 관람객들을 응시하고 있는 작품 속의 눈을 바라보면 달리 보일 것이다.

미완성처럼 보이는 그들의 비교적 선명한 눈은 우리에게 분명한 성찰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어 안 작가의 ‘나는 울면서 태어났지만, 많은 사람들은 기뻐했다’는 무언가를 쉽게 획득하고 소모해버리는 사람들의 태도에서 폭력과 무관심 등을 발견하고, ‘너가 원하는 사진(결과물)을 얻기 위해서라면, 수단과 방법 따윈 가리지 않는 거야?’, ‘마치 우리가 진화된 문명을 누리고 사는 축복받은 존재들로서 스스로를 특별하다 생각해?’ 등 직설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작품과는 별개로 특이한 점은 안 작가가 작품과 관람 사이의 관행적 관계에 주목해 관람객들이 물침대에서 작품을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를 해놓았는데, 오히려 이 점이 아쉬운 대목이었다.

작품이 12분가량으로 다소 긴 시간이긴 하지만 영상 속의 메시지는 이해하기 쉽게 직접적으로 나온다.

 

 

 

 

그런데 실제 관람객들은 그러한 작가의 말 보다 물침대의 편안함에 더 취한 듯 소비했다.

만일 작가가 작품과 함께 현장에서 관람객들의 쉽게 소비하는 태도를 다시 한 번 꼬집고자 했으면 매우 성공적이었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청년작가들은 발상의 전환으로 그들만의 자유로운 성향을 잘 보여주고 있었다.

최하늘 작가의 ‘초국가를 위한 내일의 원근법 모듈’ 시리즈는 총 8개의 조각품들로 각각의 작품들엔 여러 개념이 혼재해 있고 또 명확한 명제 역시 잡혀 있지 않다.

그 중 ‘남성성 제고’는 특히 시선을 끄는데, 이 작품은 황인과 백인, 흑인 등 모든 인종의 팔과 다리를 가지고 있다.

뿐만 아니라 총을 든 남성과 꽃을 든 여성 등 한 몸 안에 많은 것이 공존하고 있다.

작품의 제목과 함께 봤을 때, 최 작가는 통념적인 남성성에 대해 강한 의문을 제기하는 듯하다.

또한 다른 작품이 그러하듯 ‘남성성 제고’ 옆에는 ‘진보는 지옥이다’라는 명제가 적혀 있는데, 최 작가는 수많은 팔다리를 가진 이 작품을 통해 진격하는 상징적인 모습이 진보에게 아직도 유효한지 그 물음을 동시에 제기하고 있다.

이처럼 작가의 특이한 창작 방법과 두 개 이상의 명제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붙잡고 다양한 해석을 수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선함을 전한다.

이어 우리 신체의 내부와 시간에 주목해 노화하는 시간을 주제로 한 장서영 작가의 작품들도 주목할 만하다.

장 작가의 공간에 들어서면 시공간을 초월한 느낌을 받게 되는데, 실제로 작품들 역시 그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가장 큰 스크린의 ‘유어 딜리버리’ 영상은 어떤 덩어리의 이미지를 계속 보여주며 한 소녀가 ‘안젤리나’라는 인물에게 쓴 편지를 낭독하고 있다.

편지의 수신인은 바로 알 수 있듯 안젤리나라이고, 발신자는 놀랍게도 안젤리나의 선대들이다.

이는 실제 난소암과 유방암을 겪은 미국의 영화배우 안젤리나를 가리키는데, 영상 속 선조들은 그녀가 알지 못할 질병을 배달할 수밖에 없다고 얘기한다.

그러면서 ‘직접 보진 못했지만 내가 사랑받은 만큼 사랑하는 안젤리나’라고 하면서, 마지막에 ‘또는 흐리히에’, ‘또는 애니’ 등 여러 이름을 읊는다.

‘내’가 예측하지 못하는 몸속의 어떤 유전자를 주목하고 또 이를 알고 말해주는 ‘선조’들을 생각해 만들어진 이 영상은 색다른 관점에서 관람객들에게 놀라움과 애통한 감정을 고스란히 전한다.

전시는 이밖에 개의 입 안을 구현한 공간과 거대한 자연 풍경과 스크린 이미지가 마주치는 새로운 방식의 작품, 또 무의식중에 익숙한 작품을 만들게 되는 인간의 속성을 잘 보여주는 설치 작품 등을 통해 자유롭고 유동적으로 흐를 수 있는 그들의 성향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것은 물방울 그 자체였다.

각기 다른 개성을 보여주는 9명 작가들의 공간 속 작품들을 전부 관람하고 나온다면, 아마 그 물방울에 흠뻑 젖어 있을 것이다.

/글·사진=최인규기자 choiin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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