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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눈물의 배후

눈물의 배후

/최광임

한 계절에 닿고자 하는 새는 몸피를 줄인다

허공의 심장을 관통하여 가기 위함이다

그때 베란다의 늦은 칸나 한송이

쇠북처럼 매달려 있기도 하는데

그대여 울음의 눈동자를 토끼눈으로 여기지는 마시라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여기는 고목일수록

어린 잎들 틔워내는 혼신의 힘은 매운 것이니

지루한 가뭄 끝 입술의 심혈관이 터진 꽃무릇 같은 것이니

턱을 치켜세운 식욕 왕성한 새끼들에게

공갈빵이나 뜯어 먹게 하는 무색한 시절을 두고

부엌으로 달려가 양푼에 밥을 비빈다

어떻게든 허방으로 떠밀리지 않기 위하여

뙤약볕 같은 고추장비빔밥을 쑤셔 넣어 보신 적 있는가

막무가내로 뒤집어지는 매운 밥의 본능이

한 세월로 건너가는 새가 되는 것일 뿐,

천둥벌거숭이 나는 이 새벽 가슴 골짜기에서 솟구치는

눈물의 거룩한 밥을 짓고 국을 끓일 것이니

그대여 울음의 배후에 대하여 숙고하지 마시라

삶이 풍장 아닌 다음에야 칸나꽃 피고지고 또 필 것이므로

먼동 트기 전 세상 한복판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내 발굽에 편자나 박아주시라

-시집 ‘도요새 요리’ 중에서

 

 

 

 

한 계절이 한 계절에게로 건너가 닿고자 하는 최종의 목표가 단지, 아무것도 없는 허공의 심장을 건너가기 위함이라면 얼마나 덧없을 것인가. 붉디붉은 칸나꽃 한 송이처럼, 지루한 가뭄 끝에 입술의 심혈관이 터진 꽃무릇처럼, 막무가내로 뒤집어지는 본능을 잠재우기 위해 뙤약볕 같은 매운 고추장비빔밥을 쑤셔 넣는 것은 오직 하나, 턱을 치켜세운 식욕 왕성한 새끼들과 어떻게든 허방으로 떠밀리지 않기 위해서다. 먼동 트기 전 세상 한복판으로 뚜벅뚜벅 걸어 들어가는 발굽 하나를 위해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건 단지 새 편자나 박아주는 것뿐이다. 오늘도 수많은 발들이 온 몸으로 길을 밝히며 새벽을 연다. 자신을 위해서 혹은 가족을 위해서 길을 나선 모든 발들이여, 하루를 돌아 집으로 돌아왔을 때 가슴 골짜기에서 솟구치는 눈물의 거룩한 밥을 짓고 국을 끓여 집의 온기를 가득 채우기를./이기영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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