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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 우리시대 아Q들에게 고함

 

 

 

 

 

우리 삶은 여러 가지 감정으로 채색돼 있다. 그런데 감정에 대한 세간의 평가도 여러 가지다. 감정은 믿을 것이 못하다고 하여 감정을 저차원의 정신으로 간주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감정은 우리 인생을 풍요롭게 만드는 것이라 하며 감정을 이성보다 못한 위치에 두는 것을 공정치 못하다고 생각 하는 사람도 있다. 우리 정신 문화사를 살펴볼 때도 감정과 이성을 이분법으로 나누었던 때가 있었다. 이것처럼 오늘날의 세상은 거의 모든 일에 승패를 가르고 승자에 열광한다. 대표적인 예가 스포츠와 선거다. 스포츠와 선거는 승패가 있는 것이기는 하다. 그런데 우리 인생이 어디 승패가 분명한 일만 있는 것인가? 우리 정신을 어디 감정과 이성으로 분명히 나눌 수 있는 것인가? 행복감에 대한 정도가 있을 뿐, 반대로 불행에도 정도가 있을 뿐 완전한 행복과 완전한 불행을 정의하기도, 느끼기도 어렵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기고 지는 일에 목숨을 건다. 이기면 순도 백퍼센트의 행복이 찾아올 것처럼 말이다.

승패로 치자면 정치권이 빠질 리가 없다. 총선이 이듬해로 다가오니 이기고 지는 일에 극성스러움이 더해가고 있다. 사회적 문제에 정의로움과 공정함의 원칙 대신 진영의 논리가 자리 잡아 무조건 이겨야 한다는 사생결단의 싸움이 가관이다. 골프 갤러리들은 조용히 관전하는데 정치권 갤러리들은 정치권싸움을 대리한다. 행여나 질까봐 불안감에 더 목소리가 커진다.

인간의 다양한 감정 중 불안의 심리를 가장 깊이 들여다 본 사람은 정신분석학자 프로이트이다. 프로이트는 자신이 겪는 심리적 불안을 통제할 수 없을 때 자신을 방어하기 위해 무의식적으로 스스로를 속이며 심리적 상처를 회피하려는 심리를 방어기제(defense mechanism)라는 개념으로 설명하고 있다. 불안에 대처하는 중요한 심리 역동적 기능인 이 방어기제의 종류는 억압, 부정, 투사, 동일시, 퇴행 등 다양한데 대표적인 것이 합리화(rationalization)이다. 합리화는 불합리한 생각이나 행동을 합리적인 것처럼 왜곡하고 정당화시킴으로써 자기만족을 얻으려는 방법이다.

뤼순의 소설 ‘아Q정전’은 중국 신해혁명 당시를 배경으로 쓴 작품이다. 주인공 아Q는 가진 것은 쥐뿔도 없지만 자만심이 크고 과거에 붙잡혀 사는 인물이다. 싸움에서 져서 피투성이가 되었어도 불쌍해서 봐줬다고 자기 합리화하고 모진 모욕을 받아도 그것이 모욕인지도 모르고 상상 속에서 과거의 영광만 늘어놓는다. 일명 ‘정신승리법’이라 불리는 아Q의 뇌에서 벌어지는 이 기만은 모든 사태를 자기중심으로 해석하고 나아가 현실 자기의 강한 부정을 통해 자기를 극도로 긍정하는 나르시시즘 극한을 보여준다. 그가 했던 정신승리란 현실적으로 패했지만 그 사실을 받아드리지 않고 자기합리화를 하는 것으로 일종의 방어기제 합리화인 셈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의 허망함을 안다. 실제로 그렇지 않기 때문에 정신승리법은 힘이 약하다. 이 승리는 일시적인 것이고 정신은 더 쇠락해진다. 물론 정신승리법이 나쁜 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신이 부당한 일을 당하면 불안하고 그래서 자신을 스스로 위로하여 마음의 평화를 되찾는 것을 꼭 나쁘다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이것은 한정적으로 사용할 때 위로의 역할을 한다. 거의 대부분 ‘정신승리법’은 현실부정이고 잘못된 판단이며 부적절한 감정을 불러온다.

국민의 뜻을 진영의 논리대로 각색하고 사회적 사태도 진영논리대로 해석하여 다 자기들이 옳고 이겼다 생각하는 정치권이야 고질병이라 쳐도, 이젠 종교단체까지 여기에 합세한 꼴을 보자니 피로감으로 몸과 정신이 축 늘어진다. 이젠 아Q를 책 속에서만 만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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