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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 ‘강물 소리에 귀 기울여라’

 

 

 

우리는 매 순간 초월을 꿈꾼다. 현실은 항상 미완이고 결핍이기 때문이다. 계속 미루어오던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전을 친구와 함께 찾았다. 전시실을 들어서자 유신체제의 대학시절 모두가 꿈꾸었던 비상의 상징인 ‘데미안’의 새의 이미지가 우리를 맞는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 투쟁한다. 알은 하나의 세계이다. 세계를 창조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헤세의 일생은 현재적 자아를 넘어서 새로운 자아를 발견하고 이를 완성하기 위한 끝없는 투쟁이자 초월의 과정이다. 참된 자아와 세계를 발견하기 위해 끊임없는 자기탈각을 시도하면서 그는 모든 초월의 방법을 꿈꾸었다. ‘데미안’에서 새의 비상을 통해 상향적 초월을 꿈꾸기 시작한 헤세가 마지막 도달한 곳은 하향적 초월의 표상인 강물소리(‘싯다르타’) 차랑차랑한 루가노 호수 근처 몬타뇰라이다. 헤세의 삶은 자아의 깊은 내면으로의 하강의 상징인 “더 아래로, 더 깊이 가라앉는” 강물소리로 완성된다.

헤세는 왜 그다지도 기존의 세계를 깨뜨리고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려 했을까? 우선 개인적으로 광기에 가까운 내적열정을 지녔던 헤세는 목회자였던 자신의 길을 따르기를 바랐던 아버지의 억압과, 개성을 말살하는 신학교의 폐쇄성에 저항하는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내게 된다. 그런 과정에서 자살을 시도하기도 한 헤세는 1차 세계대전에 이어 나치에 반대하면서 결국 스스로 관습의 옷을 벗어던지고 망명의 길에 오르는 국외자의 삶을 살게 된다. 분열된 자아, 제도권 교육제도, 독일 민족주의 등은 새로운 세계를 창조하기 위해 깨뜨려야 할 외피였다.

그러나 독일 군국주의와 나치의 탄압은 자유와 평화주의를 표방하는 그로 하여금 오히려 동양과 서양, 유럽과 아시아가 하나의 통일체라는 깨달음에 이르게 했다. 이러한 인식은 헤세 개인의 기질이기도 하지만 선교사이자 인도학자였던 외조부의 영향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성향의 결합은 ‘데미안’에서는 서양의 상향적 초월로, ‘싯다르타’에서는 동양의 하향적 초월로 나타난다. 양자는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은 것으로 그의 궁극은 자아완성이다.

‘데미안’을 출간하고 ‘싯다르타’를 쓰기 시작하던 1919년 경 헤세는 스위스의 몬타뇰라로 이주하여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 직후는 인식의 대전환기로 문명파괴를 가져온 서구의 이원론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으며 대신 대립하는 것들 사이의 균형을 강조하고 지성과 감성, 자아와 우주의 통합을 전제하는 동양의 일원론적 사유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불교, 힌두교 등의 동양사상에 이끌렸던 헤세는 ‘싯다르타’에서 ‘우파니샤드’를 인용하여 이렇게 말한다. “너의 영혼이 온 세계이다”, “인간은 잠 속에서, 깊은 잠 속에서 자신의 가장 내적인 것에 다가가며 아트만 속에 산다”, “아트만이란 자기 안에 있는 원초의 샘”과 같은 것인데 이것을 발견할 때 비로소 우주의 근본원리인 브라만에 도달한다. 모든 사람의 마음 깊숙한 곳에는 신성이 깃들어 있으므로 깊은 내면으로 들어갈 때 브라만과 만날 수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참된 자아인 아트만이 실재인 브라만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자아의 껍데기를 과감히 벗어던지고 아래로 아래로 내려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자아 밖의 세계에 귀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다.

강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강물은 어디서나 동시에 존재한다. 강에는 현재밖에 없다. 과거도 미래도 그림자도 없다.(헤르만 헤세. ‘싯다르타’)

내면으로 들어가 자신 안의 원초의 샘을 발견하자 싯다르타는 우주의 본질을 깨닫는다. 강물소리에 귀 기울이는 법을 배우고 그 의미를 알게 된 것이다. 끝없이 흘러가고 흘러오는 강은 시간을 초월한 영원한 현재이므로 “강에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강물은 만물 어디에나 동시에 존재하므로 총체성과 동시성을 갖는다는 것을. 이 깨달음의 순간 싯다르타는 미소 짓는다. 그것은 헤세의 미소이기도 하다. 새의 비상을 통해 상향적 초월을 꿈꾸었던 헤세는 이제 강물소리를 통해 하향적 초월을 경험하면서 비로소 영혼의 해방을 맛보게 된다. 개체와 우주, 상향과 하향, 동양과 서양이 만나는 순간이다. 마지막 전시 공간에서 헤세가 법열의 미소를 지으며 ‘새’의 노래를 들려준다. “새는 당신에게 노래합니다.

- 사랑의 노래를, 나의 노래를.(헤르만 헤세, ‘사랑의 노래’ 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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