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시론] 그 많던 미세먼지는 다 어디로 갔나
[경기시론] 그 많던 미세먼지는 다 어디로 갔나
  • 경기신문
  • 승인 2019.07.17 1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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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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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호택국립한경대 법학과 교수
오호택
국립한경대 법학과 교수

 

두세 달 전만 해도 아침에 미세먼지 예보를 확인하는 것이 우리의 일과였다. 측정기로 직접 측정해 보는 사람도 많았다. 구글은 올해 상반기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많이 검색된 단어로 미세먼지를 들었다. 비록 1위는 영화 ‘어벤져스 엔드게임’의 악역 타노스였지만 미세먼지는 최대 관심사 중 하나였다. 그런데 일본의 수출규제 기사가 매스컴을 점령한 요즘 미세먼지 뉴스는 대부분 사라졌다. 일기예보에서도 미세먼지는 대개 ‘보통 또는 좋음 단계’라고 한다. 실제로 미세먼지는 대부분 사라진 것 같다. 날씨가 더워지자 중국 동북부 지방에서 화석연료의 사용이 줄고, 바람도 편서풍에서 동남풍으로 바뀌어 미세먼지 유입이 줄었다. 기온이 올라가 하늘 높은 곳까지 대기순환이 원활해지고, 장마철 잦은 비가 미세먼지를 씻어냈다. 그렇다면 정말 미세먼지는 모두 사라졌을까?

- 관심이 적을 때가 장기적이고 객관적인 정책마련의 적기

미세먼지가 한창이던 3월 문재인 대통령은 서해에서의 공동 인공강우실험 같은 중국과의 공동대책을 주문했다. 미세먼지 대책용 추경도 당부했다. 정부와 지자체, 매스컴에서는 연일 미세먼지 관련정책을 쏟아냈다. 죄 없는 고등어가 수난을 당하고, 경유차 운전자는 파렴치한으로 몰렸고, 야외 공기청정기가 제시됐다. 하지만 이런 단기적이고 대중적 관심에 기대는 대책만으로 미세먼지 문제가 해결될 리 없다. 원인분석조차 아직은 미흡하다. 중국이 우리와의 공동대응을 거부하는 이유다. 원인을 막연히 중국에서 찾는 것은 대중의 화풀이 대상을 찾는 아베식 선동정치일 수 있다. 국내원인이 중국발보다 크다는 국내 전문가도 많다. 장기적이고 객관적인 원인분석과 대책이 필요하다.

지금처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졌을 때가 정책마련의 적기다. 불필요한 논쟁을 피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이 존중될 수 있다. 국민설득은 그 다음이고, 국제적 공조는 또 그 다음이다. 이때 중요한 것은 다른 분야와의 종합적인 고려다. 예컨대 탈원전정책은 방사능 위험을 줄이지만 다른 방식의 전력생산은 미세먼지를 늘린다. 태양광 발전소 건설로 지난 3년간 여의도 면적의 15배가 되는 삼림이 사라졌다. 그만큼 온실가스 흡수능력이 줄고 미세먼지는 더 많아졌다. 태양광패널의 생산과 폐기에도 미세먼지와 온실가스가 많이 발생한다. 문대통령은 ‘수소차 홍보모델’임을 자처하며 수소차를 대안으로 거론했지만 수소생산과정에서 탄산가스가 많이 나온다. 경유차의 경우 미세먼지는 많이 나오지만 온실가스는 적게 나온다. 2015년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우리는 2030년 예상 온실가스를 기준으로 37%를 줄여야 한다. 미세먼지만 생각하다가 온실가스로 제재를 받을 수 있다. 2023년 점검이 시작되는데 이 문제도 그 때 가서 고민할 것인가.

- 정부와 기업·개인이 각각 자기 영역에서 최선을 다해야

조선시대 임진왜란 1년 전 일본에 사신으로 갔던 황윤길은 일본의 침략을 예견했지만 조정은 아무 준비 없이 왜군을 맞았다. 1875년 일본의 운요호(雲揚號)가 강화도에 와서 미국의 페리호 사건(1853)을 흉내 내어 침략의도를 드러냈는데도 1910년 일본에 강제병합될 때까지 우리는 별다른 대비를 못했다. 작년 10월 30일 강제징용배상판결 이후 일본은 보복을 공언해 왔다. 하지만 정부는 대책 없이 8개월을 보냈고 7월 1일 일본이 수출규제를 발표하자 부랴부랴 수많은 긴급대책회의를 열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고 했던가. 이러다 불현듯 겨울이 다가오면 우리는 또다시 미세먼지 걱정을 하고 있을 것이다. 1만2천 명이 목숨을 잃은 런던의 대형스모그 사건(1952) 이후 영국은 장기적이고 과감한 정책들을 통해 지금까지 최상의 대기질을 유지해 왔다. 개인은 멀티태스킹이 어렵지만 국가는 가능해야 한다. 누군가 일본의 무역보복에 대처하는 동안 누군가는 미세먼지와 온실가스를 고민해야 한다. 기업은 기업대로 자기생존을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고, 정부와 전문가는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국민여러분 동요하지 말고 생업에 종사하십시오” 1970년대 계엄령 담화문의 일부인데, 이 시점에서 우리 모두에게 고하고 싶다. “동요하더라도 자신의 분야는 자기 책임이니 최선을 다 하십시오” 그런 노력들이 모여 우리의 미래가 결정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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