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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병두의 시선]제주도, 조천 노을음악회 순례

 

 

 

조천포구 방파제 여름은 따뜻했다. 시나리오 작업으로 제주도를 찾았다. 제주도에는 현길언, 현기영 소설가를 비롯한, 나기철 시인 등 문인들이 있다. 마을들을 서성이다가 만두가게에 팜플렛이 눈에 들어왔다. 조천읍은 2만 명 정도가 산다. 민족자존의 고향으로 불리는 3.1운동 만세로는 이곳 주민들의 자긍심과 우리역사의 숨결로 남아있기 충분하고, 이곳 용천수는 바다 물로 짠물이지만 단물로 관광지로 손꼽힌다.

노을음악회가 열리는 방파제에 자리했다. 바람은 불고 비가내릴 듯 공연이 불안했지만 주민들이 준비한 음악회는 흥에 겨웠다. 행사를 기획한 김형진 한마음 회장은 음악을 통해 한밤의 선율을 만끽하자며 내가 사는 이웃과 가족, 조천리 아름다움을 밤하늘에 감미로운 감동으로 우정을 나누자고 인사를 했다. 육지에 살다가 섬으로 들어온 외지인, 그리고 제주시내에 살다가 이주한 시민, 본토마을을 지키는 주민들이 지혜를 모아 공동체정신과 갈등을 해소하는 화합의 장을 마련한 것이다. 색소폰, 합창, 오라통기타, 제주브라스 퀸탯 연주로 제주에서 살며 동아리음악가족들이 하나의 선율을 내는 장기자랑이었다.

40대 후반에서 6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에 노을빛이 더 선명했다. 나기철 시인의 소개로 이곳 행정공무원 임명심 팀장님의 따스한 인사와 친절함도 훈훈했다. 일을 추진하고 기획한 주민들을 보면서 문득 테레사 수녀님 말씀이 생각났다. “가장 위대한 사람들의 가장 훌륭한 생각이 가장 하찮은 마음을 품은 소인배들 때문에 무너질 수 있다. 그래도 크게 생각하라, 당신의 최고를 세상에 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라. 좋은 일을 하다 보면 이기적인 다른 동기가 있다고 비난받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은 일을 하라”

글을 쓰다, 팔이 노동의 휴식을 불러 바깥공기를 마시고자 무심코 서귀포방면의 버스에 올랐다. 기사는 친절했고, 외지인인 내게 호의를 베풀어 줬다. 조천에서 멀리 떨어진 서귀포관광극장을 둘러보고 이중섭미술관도 찾았다. 때마침 미술관에서는 특별기획전이 열리고 있었다. 가족에게 보낸 그림 편지전은 생활고로 일본으로 떠난 이중섭 화가의 부인 이남덕 여사와 떨어져 지낸 시간을 그리움의 회상으로 담는 편지그림이었다. 피난시절 피란민에게 주는 배급으로 연명하던 이중섭 가족은 밭에서 채소를 캐오거나 바닷가에서 게를 잡아서 놀다가 반찬으로 삼았다고 한다.

제주도에 거주지를 마련해준 송태주 김순복 부부는 1.4평 정도 되는 방을 마련해 줬다. 이 조그마한 방에서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네 명의 가족이 산 것이다. 이중섭의 그림에는 그래서 가족의 애환이 듬뿍 담겨져 있고 외로움들이 사무치게 묻어 있다. 그림마다 가족들과 생활하는 시공간적인 가난한 시절의 울림들을 말해주고 있다. 비좁은 방이지만 가장 행복했던 보금자리였다고 이중섭은 말한다. 지독한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술로 40세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지만 각박해져가는 사회에서 가족에 대한 소중함을 일깨우는 시간이 서귀포였다고 한다.

제주도에 표류해온 하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하멜은 낯선 조선 땅에 표류해 13년 28일이라는 시간을 보내고 고국으로 돌아가 표류기를 썼다. 조선에 억류된 기간의 임금을 동인도회사에 청구하기 위한 목적이 컸다. 이것이 우리에게 알려진 하멜표류기다. 현재 제주도의 용머리 해안으로 들어가는 길에는 하멜을 기념해 만든 배 모양의 상선전시관과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저마다 경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살림살이는 더 나아지지 않고 나날이 힘들다고 말하는 현실이다. 그럼에도 절약을 부르짓는 일은 아주 작다. 오히려 물질뿐 아니라 정신의 소비 진작을 부르짖는 사람들이 더 많아 보인다. 우리는 풍요롭지만 가난하고, 가난에 허덕이지만 더 많이 써야만 경제가 굴러가는 현실에 놓여있다. 참 어려운 시대를 만나고 있다. 이를 헤쳐 가는 인공지능시대와 고령화시대에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두려움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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