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5 (목)

  • 흐림동두천 1.0℃
  • 흐림강릉 1.3℃
  • 서울 3.2℃
  • 대전 3.3℃
  • 대구 6.8℃
  • 울산 6.6℃
  • 광주 8.3℃
  • 부산 7.7℃
  • 흐림고창 6.7℃
  • 흐림제주 10.7℃
  • 흐림강화 2.2℃
  • 흐림보은 3.2℃
  • 흐림금산 4.4℃
  • 흐림강진군 8.7℃
  • 흐림경주시 6.7℃
  • 흐림거제 8.0℃
기상청 제공

[삶의 여백]ㅇㅇ스럽다

 

 

 

 

 

딸아이가 혼인을 한지 2년이 지나고서야 좋은 소식을 알렸다.

아직 중년의 젊음이 아쉬워 미처 보내지 못하던 마음에 비로소 종지부를 찍긴 했지만 기다리던 소식이라 함께 기뻐하며 설레는 마음으로 열 달을 오롯이 채운 2019년 4월에 드디어 건강한 대한의 건아를 만나게 됐다. 할머니가 되는 마음과 손주를 보니 기분이 어떠하냐며 아직 신세계를 경험하지 못한 주위사람들의 호기심 가득한 질문에 채 대답할 겨를도 없이 우린 첫 손주의 이름을 짓기 위해 애를 쓰기 시작했다.

그 아이의 존재의미가 될 아름다운 이름을 고르는 일은 어려웠다.

훌륭한 삶을 사신 위인을 기리며 그의 궤적을 따를 인물이 되길 바라거나 잘생기고 성공한 연예인의 이름을 떠올려도 봤지만 그 아이의 일생과 함께 가야할 영원의 의미가 있기에 특별하되 특이하여 놀림 받지 않아야하고 신중하고 뜻 있어야 하되 과한 의미를 심지 않아야 하며 현대적인 시류를 따르되 가볍지 않아야 했다.

우리 아이 셋의 이름을 공부해 지은 경험이 있던 남편은 그날부터 작명 책을 들여다보며 첫 손주의 이름을 지어주는 시간을 즐거운 마음으로 그러나 진지하게 고심했다. 그리하여 서로의 마음에 합의를 내고 하나의 이름을 결정해 주민등록부에 그 이름을 등록했다. 드디어 태어난 이 땅에서 국민의 일원으로서 사람의 구실을 할 명분을 획득한 것이다. 생명의 벅참은 이름으로 완성됐다.

이름은 개인이 집단속에서 자신의 고유성을 지니고 특별한 존재임을 드러내는 대표적인 코드가 된다. 가볍게 지어진 이름으로 어릴 적 놀림감이 되어 마음의 상처가 되는 이름이 있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자신이 살아가는 방향과 삶의 태도로 그 이름을 떠올리면 그 사람의 전부가 되는 것이 이름인 것이다.

조금은 지나간 얘기지만 젊은이들 사이에 ㅇㅇ스럽다라는 말이 회자된 적이 있다. 그 뜻이 궁금해 알아보았더니 실생활에서는 부끄럼도 많아 보이고 지극히 내성적으로 보여 저렇게 연약해 보이는 사람이 어떻게 자신의 맡은 배역을 몰입도 높게 소화해 내는 걸까 하고 연기내공에 감탄하게 되는 관록 있는 여배우의 이름을 붙인 도시락이 그 어원이었다. 편의점의 즉석식품을 사 먹던 소비자들이 이 여배우의 이름을 내건 도시락이 타사제품보다 저렴한 가격에 비해 알찬 구성으로 되어 있어 만족도가 높았는데 이를 시작으로 다른 가성비 높은 제품을 지칭할 때도 사용했다고 한다. 그 내용을 알고 나니 처음 듣는데도 그 여배우의 이미지가 떠올라 단박에 의미가 전달되는 느낌이었다. 겉치레만한 화려한 외형보다 알차고 실속 있는 것을 만났을 때 ㅇㅇ스럽다란 표현을 사용하는 것이다. 물론 자연발생적으로 생겨난 반대의 의미로 사용하는 이름도 생겨났다. 좋은 뜻이 아니었기에 그 연예인의 개인적인 품위손상 차원에서 반대의 개념을 지닌 그 표현사용을 자제하기 위해 좋은 의미의 상품명은 단종 됐다고 한다.

우리는 누구나 보고 듣고 느낀다. 오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들으며 받아들인 1차원적인 자극을 통해 자신의 정보를 정리한다.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 누군가의 강요에 의한 것이 아닌 내게 오는 어떤 경쾌함, 어떤 즐거움을 구별해 내어 옳음과 그름을 거르는 것이다. 그 가운데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자신의 이름은 어떤 가치가 되는지 가늠할 수 있는가. 스스로가 붙이는 수식 말고 남이 붙여주는 이름에 당당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문득 내 이름은 까닭없이 부끄럽다.

귀하고 아름다운 손주의 이름을 받아들고 우리의 아가가 이 이름을 자신으로 내 걸고 떳떳하고 당당하게 그리고 다른이들이 붙여주는 아름다운 수식을 맘껏 누릴수 있는 밝고 건강한 삶을 살길 바란다.

ㅇㅇ스럽다가 자신의 품위를 손상시키는 표현이 아닌 많은 이가 그 사람은 그럴만하다고 기분좋게 인정하고 스스로 알고 있는 자신과 왜곡되지 않은 긍정의 이름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란다.

 









COVER 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