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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 자아의 감옥과 ‘눈’의 에피퍼니

 

 

 

‘문학의 집 서울 남산문학당’에서 기획한 ‘영미문학 산책’ 강의를 얼마 전 마쳤다. T. S. 엘리엇(Eliot: 1888∼1965)의 ‘황무지’로 시작해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의 ‘더블린 사람들’ 마지막 단편인 ‘죽은 사람들’로 강의를 끝내면서 상당한 수준의 수강생들이 보여준 학구열에 큰 감동을 받았다.

최근 지면에서 소설가 최인훈이 꼽은 추천 도서 중 ‘더블린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과 선생이 흰 눈에 발자국 내는 것조차 싫어했다는 기사를 읽으면서, 한때는 절로 사용돼 절집이라 불리던 돈암동 산꼭대기 집에 눈이 쌓일 때면 너른 마당을 뒤덮은 순백의 세상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계시던 선친이 떠올랐다. 15편의 단편으로 구성된 ‘더블린 사람들’은 조국 아일랜드와 더블린에 대한 조이스의 복합적인 감정의 산물이다.

조이스는 20대 초반인 1904년 조국을 떠나 성년의 삶 역시 유럽대륙에서 살았지만 그의 작품의 중심에는 항상 더블린이 있었다. “나는 항상 더블린에 관해 쓴다. 내가 더블린의 심장에 닿을 수 있다면 세계 모든 도시의 심장에 닿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수 속에 보편이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아 그는 더블린을 모든 도시의 상징적 축도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블린 사람들’의 창작 배경에 대해서도 “내 의도는 내 조국의 도덕사의 한 장을 쓰려는 것이다. 나는 그 장면으로 더블린을 택했는데 더블린이야말로 마비의 중심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조이스는 더블린 사람들의 종교적 도덕적 ‘마비’와 타락과 죽음을 묘사하고자 했다. 그런 이유로 개작을 요구하는 15개 출판사에서 18번이나 출판을 거부당하는 10여년에 걸친 우여곡절 끝에 1914년 비로소 이 책은 출판된다.

엘리엇은 ‘죽은 사람들’의 아름다운 문체를 극찬하며 최고의 단편으로 꼽은 바 있는데, 1922년에 출간된 ‘황무지’는 이로부터 큰 영향을 받은 것으로 평가된다. 1차 세계대전 이후의 문명적 정신적 황폐를 그린 ‘황무지’처럼 ‘죽은 사람들’ 역시 살아 있으되 죽어있는 더블린 사람들의 마비된 영혼을 그린다. 조이스는 조국 아일랜드와 가톨릭교 등에 만연한 정신적 마비와 부패가 조국의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했고 이를 예술을 통해 깨우치고자 했다. 영국 제국주의에 사로잡힌 자들 또는 아일랜드의 극단적 민족주의자들이 아일랜드의 현재를 제대로 이해할 때 조국의 정체성은 확인될 수 있고, 과거와 현재, 죽은 자와 산 자의 영혼 역시 교감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자기계시’의 순간이 필요한데 그것이 조이스가 말한 ‘에피퍼니’이다.

‘죽은 사람들’의 에피퍼니는 마지막 장면에서 가장 극적으로 발견된다. 우리는 인생을 착각 속에 살아간다. 주인공 가브리엘은 자기중심적이고 친영국적인 지식인이다. 아내 그레타에 대해 한껏 낭만적인 감정으로 고무되어 있던 순간 그는 아내로부터 과거에 자신을 사랑하던 사람이 있었고 자기 때문에 그가 죽었다는 고백을 듣는다. 아내의 정신세계까지 지배하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던 가브리엘은 그레타의 마음속에 죽은 마이클은 살아 있고 살아있는 자신은 죽어있다는 충격적인 사실을 깨닫게 된다. 그 고통의 순간 자신을 되돌아보며 관용의 눈물을 흘리는 자기발견의 에피퍼니가 찾아온다. 창가에 서서 눈이 내리는 것을 바라보면서 그는 마비된 자아의 감옥으로부터 해방되는 정신적 부활을 경험한다.

“눈은…소리 없이 내리고 있었다. 눈은 마이클 퓨어리가 묻혀 있는 언덕 위의 쓸쓸한 묘지 구석구석에도 내리고 있었다… 온 세상에 고요히 내리는 눈 소리,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과 죽은 사람들에게 가볍게 내리는 눈 소리를 들으면서 그의 영혼은 서서히 의식을 잃어갔다”

국내외로 세상이 시끄럽다. 경제보복에 나선 일본의 음모를 보고 있자니 이 뜨거운 여름, 하얀 눈의 깨달음이 떠오른다. 역사를 되돌아보고 자아의 감옥에서 벗어나라고 고요히 말하는 내면의 소리가 그들에게 들리기를 기대하는 것은 부질없는 상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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