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 뒤를 말한다면
[생활에세이] 뒤를 말한다면
  • 경기신문
  • 승인 2019.07.29 18:49
  • 댓글 0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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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지안 수필가
최지안 수필가

 

뒤. 공간적으로 향하고 있는 방향에서 반대되는 쪽이나 곳. 그늘지고 뭔가 불안하다. 보이지 않는 쪽에 위치해 있어서 그런가. 보이지 않으면 신뢰할 수 없어서인가.

뒤는 허를 찔리기 쉽다. 아는 사람이 치는 뒤통수는 기가 막히고 불쌍한 사람 등을 치면 파렴치한이다. 방심하다가 뒤꿈치를 물리기도 한다. 먹고 난 뒤, 놀고 난 뒤, 사랑한 뒤, 일을 본 뒤에도 항상 깔끔할 것. 그래야 뒤탈이 없다. 사건은 언제나 뒤에 생기고 사고도 뒤에서 나기 때문이다. 교실에서 말썽을 일으키는 축들은 늘 맨 뒷줄에 포진해 있다.

뒤끝이 좋아야 관계가 원만하다. 의견이 안 맞아 언쟁을 높였을지라도 화해할 때는 앙금이 남지 않아야 한다. 털어내지 못하고 있다가 부지불식간에 꼬챙이처럼 튀어나온 감정이 상대의 심장을 찌르기도 하니까.

맛있는 후식 중의 하나가 뒷담화다. 입 하나로 손쉽게 타인을 음해할 수 있으며 뒤에서 해야 효과적이다. 씹는 맛이 좋아서 씹을수록 중독에 빠지고 말이 많은 사람들이 즐겨 찾는 안주다. 저렴하고 질이 낮아 오래 씹다보면 입맛이 쓰고 가끔 탈이 나는 단점도 있다. 맞장구를 쳐주는 사람이 있어야 조건이 충족된다.

일명 ‘빽(background)’ 있는 사람은 낙하산으로 입사한다. 부패한 관리는 정당하지 않은 뒷거래를 해서 뒤가 구리다. 나쁜 짓은 결국 뒷덜미를 잡히기 마련, 연루된 자들의 배후는 책임지지 않으려 뒷짐을 진다. 분노가 치민 국민은 뒷골이 당긴다. 이로 인한 뒤치다꺼리는 골치 아프고 뒤로 밀려나지 않으려면 뒷마무리를 확실히 해놓아야 한다.

뒷이야기는 흥미롭다. 숨겨진 이야기는 들춰봐야 속이 시원하다. 정사보다 야사가 솔깃하고 그럴듯한 법. 표면보다 감춰진 이면이 진실이라고 믿는 아이러니도 생긴다. 사람들은 보고 싶은 곳을 주시하고 믿고 싶은 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문제가 생긴다면 ‘야사(野史)니까’ 하며 꼬리를 내린다.

뒤에도 힘이 있다. 뒷심은 막판까지 끌고 가는 힘이다. 운동 경기에서도 이것은 중요하다. 전반부에서 잘했다 하더라도 후반부에서 득점하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 가끔 후반부에서 뒤집어지고 승패가 나뉘는 경기도 있다. 이 후반부를 장악하는 힘이 뒷심이다.

뒷심이 없어서 용두사미로 끝나는 일도 많다. 처음엔 의욕이 앞서고 굉장한 성과와 파급효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일들이 유야무야 끝난다. 개인의 일이야 개인으로 끝나지만 국가나 단체에서 하는 일이 용두사미라면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한다. 말도 되지 않는 거창한 사업으로 삽질을 했지만 그 결과는 고스란히 국민의 몫으로 남은 일은 굳이 말할 필요도 없겠다.

강물이 흘러가는 것은 상류에서 미는 힘 때문이다. 뒤에서 밀어주는 힘으로 바다까지 간다. 뒷심을 발휘해 누군가 빛이 난다면 그 뒤에는 보이지 않는 무명이 단단히 받쳐주었기 때문이다. 백댄서, 들러리, 조연, 수비수, 가족처럼 보이지 않은 뒷받침이 있기에 주인공이, 주연이, 영웅이 빛날 수 있다.

대만 고궁 박물관에서 본 상아 공예가 기억에 남는다. 쌀알만 한 크기에 조각된 작품을 보려면 확대경으로 봐야 할 만큼 아름답고 뛰어난 예술품이었다. 그런데 정교하고 세밀한 조각을 10년 하다보면 조각가는 눈이 먼다고 한다. 상아공예뿐 아니라 입이 벌어지는 아름답고 훌륭한 그들의 문화재 뒤에는 수많은 예술가의 파리 같은 목숨이 숨어 있었다.

역사는 고인돌을 옮기거나 만리장성 축조에 끌려간 수많은 피지배계급을 조명하지 않는다. 그러나 수많은 무명의 ‘뒤’가 있기에 문화가 창조되고 문명이 발전한다. 탁월한 선수 뒤에는 뛰어난 코치가, 훌륭한 예술가 뒤에는 안목 있는 후원자가 존재한다. 골목대장도 따르는 꼬맹이들이 있어야 으스댈 수 있고 국민이 있어야 대통령도 권위가 생기고 국가가 존재한다. 뒤라고 기죽지 말 일이다. 세상의 모든 ‘뒤’여 파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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