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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바다 지킨 두 영웅의 역사경영

 

 

 

이순신을 모르는 국민은 아마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그가 수많은 전쟁을 혼자 치렀다고 믿진 않지만, 충무공 이순신의 곁을 지키고 함께 왜적에 대항한 이들에 대해는 생각보다 무관심하다.

역사를 빛낸 모든 이들을 기억하기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르지만, 모두를 기억하기 위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만은 확실하다.

전쟁에 대비할 수 있도록 이순신의 손과 발이 되어준 정걸 장군에 대한 역사적 사료와 기록을 모두 모은 ‘80세 현역 정걸 장군’은 그런 의미에서 집필됐다.

정걸 장군은 이순신 장군보다 한 세대나 앞선 인물이지만, 여든의 나이까지 임진왜란을 비롯한 전쟁들에 참전해 승전에 크게 기여했다.

그런 그의 업적은 역사적 평가를 받을 충분한 가치가 있다.

정걸은 1514년 흥양(지금의 전라남도 고흥) 출생으로 문과 집안의 자제였으나 무과에 지원하여 급제했다.

후에 이순신과는 무려 31년이라는 나이 차가 나지만 일흔일곱의 나이에 이순신의 전라좌수영 경장(조방장)이 됐다.

정걸은 겸손과 지혜의 덕목으로 이순신이 전라좌수영으로서 제대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물심양면 도왔고, 풍부한 경륜과 지혜로 실질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정걸의 도움이 필요했던 까닭은 조선 시대 곡창지대였던 충청도와 전라도의 제대로 된 수비가 절실했기 때문이다.

고향인 흥양 땅의 지리를 훤히 들여다볼 수 있었던 정걸은 그야말로 최고의 적임자였다.

그런 정걸은 조선 수군의 주력함이었던 거북선과 판옥선을 개량하고 건조하는 데 적극적으로 관여했다.

또 흥양 선소에서 전선 건조와 수리, 발포·녹도·사도·여도의 군사 훈련, 수군 후방의 전비 물자 관리까지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전쟁의 후방을 든든히 지켰다.

뿐만 아니라 부산포해전에 참전하여 전공을 세우고, 행주대첩에는 떨어져가는 화살을 실어 날라 적극적인 지원을 했다.

물자가 부족한 전란 속에서 2만 개의 화살을 지원했다는 사실은 전쟁의 승패를 가를 만한 충분한 업적이 된다.

책은 닮은꼴의 두 영웅, 정걸과 이순신이 만나 31년의 나이 차를 극복하고 조선의 바다를 지켜냈다는 한 줄의 문장으로 설명될 수 있다.

정걸은 섬김의 리더십을 발휘해 이순신에게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떠난 호걸이었다.

이순신은 그런 정걸의 나이를 고려해 그가 충청수사가 될 수 있도록 배려했다.

이와 동시에 책은 궁극적으로 충무공 이순신과 같은 우리나라를 빛낸 인물에 대해 깊이 연구하는 일, 그 과정에서 또 다른 훌륭한 인물이 재조명되는 일이야말로 우리 역사를 제대로 아는 일이라고 말한다.

그것이 역사를 진정으로 이해하는 방향을 이끄는 지표라고 전하고 있다.

/최인규기자 choiin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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