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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유와 통달] 日 수출규제에 대한 한국정부 대응 유감

 

 

 

필자는 2001년 7월쯤 미국유학을 마치고 복직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 당시 경기도청 부서조직에 ‘부품소재팀’이 신설됐다. 한국이 정밀기계 및 장비, 반도체, 전자 등의 핵심제품의 부품·소재를 대부분 일본과 독일 등으로부터 수입에 의존하는 현실을 직시하고 임창렬 도지사가 내린 결정이었다. 오랜 세월 동안 경제관료를 지냈던 인사다운 혜안이었다.

최근 벌어지고 있는 한국과 일본의 반도체부품 수출규제 분쟁을 보면서 정부가 지금까지 부품·소재의 국산화정책 추진을 소홀히 한 데 대해 30여년 간 국가발전에 종사한 공직자로서 자괴감을 느꼈다. “한국이 언제까지나 부품·소재, 식량, 에너지 등의 전략물자를 수입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라고 말한 미국의 한 저명한 교수의 말이 새삼 실감났다.

한일관계의 위기에 대하여는 일찍이 여러 전문가가 예고해 왔고, 필자도 본보를 통해 한국의 반일움직임에 대한 일본의 보복이 우려된다는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일본의 이런 행위를 전혀 예측하지 못했다는 듯한 기업과 정부의 반응이 놀라울 따름이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소재조달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직접 일본을 방문한 것은 더 충격으로 다가온다. 첫째는, 글로벌 순위 15위인 기업의 최고 경영자가 일본에 직접 가서 수출규제의 철회를 부탁했다. 둘째는, 이것이 국가적 사안임에도 이 부회장이 홀로 공항에서 출입국 하는 쓸쓸한 모습에서 정부가 남의 일 보는 듯하다는 인상을 받았기 때문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보면 한국과 일본은 순망치한의 관계이다. 양국은 1965년 한일조약 후 경제,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지속적으로 협력을 해왔다. 한국이 자동차, 전자·통신, 철강 등의 분야에서 눈부시게 성장할 수 있었던 것도 일본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1997년 한국의 금융위기 때 구제자금을 지원했던 몇 안 되는 선진국 중 가장 많은 액수를 제공했다. 그동안 한국이 일본과 경쟁관계를 유지하며 경제성장을 하는 긍정적 자극제가 되기도 했다. 필자는 오랫동안 국제통상 부서에 근무 중 만난 일본인은 한국에 대해 우호적이고, 필자 역시 반일감정을 갖고 있지 않다. 우리가 배울 점이 많을 정도로 장점을 많이 갖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재 한국에 대한 정치적 감정을 무역과 연계하여 풀어보려는 아베수상과 이에 대응하는 한국정부의 태도는 양국의 국격에 어울리지 않아 매우 실망스럽다. ‘철부지’같은 일본정부의 행태도 문제지만, 한국정부의 대응은 국민의 우려를 줄여주기보다는 더 증폭시키는 것 같아 안타까움을 더한다. 현재의 일본 수출규제의 정확한 실상과 향후 전망, 정부의 대응전략을 제시하지 못하고, 마치 전쟁터에 나가는 장수처럼 막연한 자신감을 심어 주며 반일감정을 조장하는가 하면, 급기야는 냉정하고 침착한 대응을 요구하는 사람들을 친일세력으로 몰아붙이지 않는가. 그러면서도 미국의 중재를 요청하는 양면적 태도는 국민의 자존심마저 깎아내렸다.

일본에 대해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의 방식으로 대응하려면 전제조건이 있다. 미국처럼 자급자족의 능력이 있어야 하며, 국력이 탄탄해야 함이 그것이다. 무역의존도가 70%에 달하며 북한, 중국, 러시아의 안보위협이 존재하는 한, 일본은 적대국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협력국이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양국은 각자의 조상이 남겨놓은 무거운 짐을 나누어 진다는 마음으로 한일관계를 극복하고 발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이번 사태가 중요 소재부품의 국산화, 양국간 역사적 과제의 해결과 경제와 안보협력 향상의 계기가 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부는 외교적 전략을 다각도로 모색하고 협상능력을 키워야 하며, 특히 일부 정치인과 청와대 수석의 분별없는 언어와 행동은 자제돼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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