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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이유

 

 

 

 

 

고등학교 때 일이다. 한문 선생님이 어찌나 고리타분했던지 수업시간에 졸지 않았던 학생은 거의 없었다. 아니 딱 한 명 있었다. 바로 나다. 여기까지 읽으면 내가 뭐 대단한 모범생처럼 들린다. 하지만 나는 다른 이유로 졸지 않았다. 지루하기 짝이 없는데다가, 선생님은 유머도 눈곱만큼도 없었다. 고사성어에 얽힌 이야기라도 좀 해주셨으면 모두 다 반항하듯 잠을 자지는 않았을 거다. 그럼에도 무거운 눈꺼풀을 지탱하기 위해 사투를 벌이며 참았던 이유는 언제까지 선생님이 일관된 모습을 유지하는지 끝까지 볼 참이었기 때문이다. 사람인데 저렇게 기계처럼 한결같을까 하는 마음과 ‘혹시나’하는 마음도 있었다. 그런데 이 선생님, 간혹 하는 말도 가관이었다. 여자애들은 가르쳐봤자 소용없다거나 졸업 후 찾아오는 법은 없다거나 여학교는 기부금이 없어 가난하다거나 심지어 여자는 예쁜 게 가장 큰 경쟁력이라 했다. 소심한 나는 속으로만 반항했다. ‘아니라구요!’

대학을 다니면서도 직장을 다닐 때도 나는 선생님이 했던 말을 기억했다. 존경하는 선생님께 매년 찾아가 인사드린다든가, 의기양양하게 학교에 기부금을 내기도 했고, 장학금 모금에 동참도 했다. 훌륭한 일은 아니어도 선배로, 제자로, 친구로 가능한 일을 차근차근 했다. 조롱하듯 말한 그 여자 제자 모습과 딱 반대로 했다. 지금도 그 분이 했던 말을 반대로 하고 사는 걸 보면 나는 기억했고 그리고 우아하게 반항하고, 행동으로 되갚았다.

지금 한국은 푹푹 찐다. 파리는 지난달 25일에 섭씨 42.6도로 사상 최고 기온을 기록했다 하는데 이는 이집트의 카이로보다도 높다며 전 세계가 놀랐다. 유럽 곳곳이 폭염에 의한 고통을 톡톡히 받고 있다. 기후의 이상 변화는 한 나라만의 문제가 아님은 주지의 사실이다. 오래 전부터 경고를 해왔고 이에 대한 논의는 근래의 일만도 아니다.

우리나라는 어떠한가? 한겨울에 냉방에서 운명을 달리 했다는 기사를 왕왕 접한다. 한여름의 쪽방촌을 떠올리면 냉방병이 얼마나 사치스러운 말인지 실감이 난다. 폭염이나 산불이나 장마와 같은 자연현상은 어쩔 수 없는 일 같지만 자연변화와 이상사태를 보면 인간이 좌초한 일이다. 우리가 프레온 가스니 배기가스니 플라스틱 남용은 물론 구제역이나 조류 독감으로 살처분해 묻은 수백만 마리의 가축들도 따지고 보면 인재가 맞다. 자연에게 해를 끼치면 고스란히 우리 인간에게 돌아온다. 우아하게 되갚아주지 않는다. 자연은 우리에게 혹독하게 되갚아 준다.

특별히 자연재해에 취약한 계층, 그중에서도 냉난방에 취약한 계층을 에너지 빈곤층이라 한다. 정부는 “소득에 관계없이 인간다운 생활을 유지하기 위한 최소 에너지는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이들은 주로 실직이나 건강상의 문제 등으로 인한 노동기회 부족이나 박탈된 사람들이고 노인, 장애인, 한부모 가구 등 에너지를 구입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지불하기 어려운 사람들이다. 취약계층들에게 인간으로서의 적정한 생활을 유지하는 데 필수불가결한 냉난방, 온수, 전기 등을 적정한 수준으로 소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제도, 정책에 대해 반대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것 같다. 왜냐하면 같은 인간이라는 명목으로 할 수 있는 최소한의 배려이기 때문이다. 맑은 공기, 청명한 날씨는 자연이 평등하게 준 선물이다. 빈부차에 따라 누구는 얼어 죽고 누구는 더워 죽는다면, 이는 자연의 법칙에 반하는 일이고 사람 세상이라 할 수 없다. 기후 불평등은 소득양극화와 함께 국가가 풀어야 할 과제이고 국민도 각자의 몫을 해야 한다. 그것이 그동안 우리가 자연에게 저지른 일에 대한 가장 품위있는 대속이다. 되갚기 위해 우리는 기억해야한다. 우리가 자연에게 한 폭력을 기억해야만 기후변화에 대책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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