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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녁 아홉 시.

나는 늘 이맘때면 내가 일하는 출판사에서 집으로 돌아온다. 지친 몸으로….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면 기다리는 사람 하나 없다. 빈집이다. 아이들과 남편은 내가 들어온 뒤 한 시간 정도 더 기다려야 귀가를 한다.

나는 불 꺼진 빈집에 홀로 들어서기가 때로는 무섭다. 지친 몸으로 겨우 키보드를 누르고 현관문을 열고 들어간다. 오늘따라 나를 반기며 쫓아 나올 강아지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이상하다. 나는 얼른 거실의 불을 켠다. 푸드덕푸드덕 몸부림을 치던 형광등이 비로소 제 자리를 찾아 환하게 밝아온다.

거실 안에 누군가 서 있다. 주방 창문 가까이 돌아선 자세로….

나는 공포에 몸이 굳어버린다. 뚫어지게 그를 바라본다. 그는 내가 들어왔는데도 움직이지 않는다. 머리카락이 오싹하니 곤두선다. 나는 기다린다. 그가 돌아서기를. 입조차 떼지 못하고….

그는 돌아선 자세에서 집안을 한 바퀴 쭉 둘러보는 모양이다. 내 눈엔 아침에 미처 정리정돈을 하지 못하고 빠져나간 집안의 어지러운 모습이 어수선하다. 집안 꼴이 말이 아니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나는 못 박힌 듯 출입문 앞에 그대로 서 있다.

이윽고 그 검은 사내가 몸을 돌린다. 검은 눈으로 그윽이 나를 바라본다. 그의 눈에는 검은 그림자가 서늘하게 앉아 있다. 나는 두렵고도 무섭다. 차가운 얼음기둥처럼 몸이 굳어 있는데….

사내가 한발 한발 내 앞으로 다가온다. 나는 숨을 멈춘다. 잠시 심장이 멎어 버린다. 사내는 표정 하나 바뀌지 않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간다. 그는 열린 현관문을 빠져나간다. 나는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다. 그가 바깥 잔디밭 사이에 난 자갈길을 걸어가는 소리가 들린다. 나는 그래도 그대로 서 있다. 이윽고 그가 어둠 짙은 대문을 열고 나가는 소리가 들린다.

비로소 나는 몸을 움직여 커튼이 드리워진 창가로 뛰어간다. 막, 대문을 나선 사내의 몸뚱이가 거리의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 보인다.

나는 또 숨이 멎는다. 나를 바라보던 그의 눈초리를 생각하고, 스치듯이 지나간 그의 몸에서 풍기던 엷은 주검의 냄새를 생각한다. 부르르 몸을 떨며 나는 또 생각한다. 그는 누구인가? 그 검은 그림자는 과연 누구인가? 그가 왜 그런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을까?

아주 순간적으로 그는 그림자처럼 눈앞에 서 있다가 바람처럼 내 곁은 스치고 지나갔다. 그런데 그는 과연 누구인가? 누구란 말인가?

그 말에 응답이라도 하는 듯이 그때까지 응접탁자 아래서 몸을 웅크리고 있던 강아지 콩이가 내 앞으로 달려온다. 나는 강아지 콩이를 내려다본다. 강아지는 코를 킁킁거리며 비로소 방금 거실을 빠져나간 그 검은 그림자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낮은 소리로 크르릉 거린다. 그의 귀는 축 늘어져 있고 꼬리는 팽팽한 긴장감에 꼿꼿하게 서 있다. 그는 으르렁거리며 나에게 묻는다. 누구예요, 누구? 방금 그 검은 사나이요?

그러나 나는 대답을 할 수가 없다. 그가 누구인지 나는 모르니까. 과연 그가 누구일까? 강아지 콩이처럼 나도 그를 모른다. 하지만 알 것 같기도 하다.

불현듯 한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어쩌면…, 그는 나였을지도….

그 누구도 아닌 나, 나 자신이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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