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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118년 전, 영화를 처음 보았을 때

 

 

 

한국에 영화가 언제 들어왔는지에 대해서는 연구자들의 주장이 엇갈린다. 1901년 9월 14일자 황성신문에는 ‘영화속 인물의 활동이 실제 사람들보다 낫다’ (寫眞活動勝於生人活動)라는 제목을 붙인 논설기사가 실려있다. 영화를 보고 나서 감상을 적은 일종의 평론이다.

미국인 여행가 엘리어스 버튼 홈스(1870~1958) 일행이 같은 해 서울을 방문했을 때 고종황제를 비롯한 고위 인사들에게 영화를 보여주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이때 본 영화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출처가 명확한 자료로서는 국내 영화 상영에 대한 최초의 기록이며, 첫 번째 평론이랄 수도 있다.

원문에는 영화를 사진(寫眞)이라고 표기했는데, 활동사진(活動寫眞)을 줄여서 부른 용어다. 요즘 표현으로 바꾼다면 대강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사람들이 활동사진(영화)을 보고 신기함에 정신이 팔려 입을 다물지 못한 채 참으로 묘하다고 찬탄하여 마지 않는다. 영화란 곧 촬영한 그림에 지나지 않는데도 그것이 배열되어 움직이는 것이 마치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과 같으니 가히 살아 있는 그림(活畵)이라 할 만하다. 북청(北淸, 중국 베이징)에 전장(戰場)을 펼쳐놓고 군대가 나오는데 걷는 법(足法)이 느리고 빠르며, 진(陣)을 치고 이를 변형도 시키고 분열했다가 되돌아오는 것이며, 흩어지고 모이고 총을 메기도 하고 들기도 하고 치고 받고 쏘아 대는 것이 모두 자연스러워 마치 사람이 살아서 움직이는 것 같았다. -(중략)-

촬영한 그림이 몸(體)이 되고 전기가 그것을 움직임으로써 활동하게 되는 것이니 이처럼 신기한 조화를 부리는 물건은 본 적도 들은 바도 없다. 우리나라는 어느 세월에 이같이 묘한 기술을 터득할 수 있을 것인가라는 탄식까지도 나왔다.

하지만 나는 말하기를, 영화 속에서 사람들이 활동하는 것은 내가 원하는 바가 아니요 진실로 바라는 것은 실제 사람들(生民)의 활동이 활발해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랬더니 어째서 그런가, 사람이라면 누구나 활동을 하지 않는가 하고 반문이 왔다. 나는 다시 대답했다. 오늘날 사람들이 활동이라고 하는 것을 보면, 영화 속 인물의 활동은 오히려 생동감이 있는데 비해 살아있는 사람들(生民)은 오히려 제대로 활동을 하지 않는 것이 오늘날 대한의 선비와 같아서 하는 말이다. 가만히 앉아서 밖에 있는 세력을 잡아 끌어 들여서는 오히려 두려워하며 입으로는 한마디 말도 내놓지 못하고 가슴으로는 한가지의 계책도 내지 못하여 대세를 만회할 수 없음이 치매증 환자와 같아서 하는 말이다.

어리숙하고 사리를 분별할 수 없는 행태가 허물어지는 토담에 흙바르기를 하는 꼴이어서 입으로는 말을 내일 수가 없고 가슴으로는 방책을 내일 수가 없어서 끓는 기름 솥에서 달아나려 해도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와 같다 해야 할까, 이런데도 살아있는 사람들(生民)의 활동을 어찌 영화속 인물의 활동과 같다 할 수 있으리오. 이렇기 때문에 영화 속 인물의 활동보다도 지금 사람들의 활동을 원한다 하는 것이다.



1901년 무렵은 대한제국의 국권이 위태로웠지만, 고종을 비롯한 위정자들은 국내외 정세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몰랐고, 스스로를 지킬만한 힘도 갖추지 못했다. 몇 년 후 국제사회에서 대한제국은 사라졌다. 영화를 처음 보고 나라의 운명을 걱정했던 무명의 지사(志士)는 어떻게 되었을까. 그로부터 118년이 흐른 2019년 현재, 처음 영화를 보며 시국을 함께 읽었던 그가 누구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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