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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가르쳐보면 알게 되는 것들

 

퇴직자들은 후배들에게 자신의 교육 실천 사례를 즐겁고 자랑스럽게 소개한다. 전에 했던 얘기를 보충하고 싶어서 또 얘기하고 이미 써먹은 버전이라는 걸 잊고 또 얘기한다. 그 선배에겐 불가사의한 일이겠지만 후배들은 그걸 민망해하고 싫어한다. 참고 견딘다. 들은 얘기를 또 들었고, 또 듣기로 예약돼 있는 거나 마찬가지라고 생각하면 지긋지긋하다.

오죽하면 버트런드 러셀은 “세상에서 제일 지겨운 사람들의 유형을 연구하고 있다”며 변명을 일삼는 사람, 늘 근심에 싸인 사람, 입만 열면 스포츠 얘기인 사람, 현학적인 사람, 허풍을 떠는 사람, 근거 없이 활기찬 여성에 더해 자신의 일화 소개로 일관하는 사람을 들었겠는가. 그는 우스개삼아 이 연구로 일곱 편의 학술논문을 발표할까 싶다고 했는데, 가령 일화로 지겹게 하는 사람은 추억으로 살아가는 나이 지긋한 신사들로서 이렇게 시작한다고 했다. “자네가 그 이야기를 하니 이런 일이 생각나는구먼.”

이런 얘기는 우리를 슬프게 한다. 우선 그 선배 자신도 오랫동안 후배로 지내면서 충분히 겪어봤는데도 결국 그 전철을 밟는다. 자신은 결코 남을 지겹게 하는 사람이 아니라고 자처하고 자신의 얘기야말로 금과옥조여서 들어도 그만 듣지 않아도 그만인 얘기가 아닌 것으로 여긴다.

다른 이유도 있다. 선배들의 얘기 듣기는 일단 혐오스럽다 하더라도 그 내용만은 대개 옳다는 사실이다. 많이 듣고 보고 읽고 겪은 결과이기 때문이다. 현직 선배인 교장, 교감 얘기도 그렇지 않은가. 그들은 겪을 대로 겪은 나머지 이젠 아이들이 마냥 사랑스럽기만 하다. 뭔가 불만이 많은 학부모는 대개 그 얘기를 들어주기만 해도 마음이 풀리는 걸 여러 번 봤고, 갖가지 어려운 일의 해결방안에 관한 자료도 다 갖고 있다. 게다가 당연한 것을 그대로 실천하지 못한 뼈아픈 후회마저도 긍정적으로 작용한다. 그들에겐 그 무엇이든 후배들을 위한 논리 전개의 자원이 된다. 그러기에 그들에게는 현장의 빛나는 자문역으로서의 자격이 부여된 것이다.

장관 같은 고위직도 그렇다. 재임 기간이 길었다면 할 수 있는 말이 그만큼 많고, 짧았다면 짧아서 하고 싶은 말이 많을 건 당연하다. 적절한 기회가 주어진다면 할 말이 왜 없겠는가.

교육부장관 재임 기간이 평균의 두 배가 넘는 어느 학자는 교육개혁 토론회에서 “대입제도는 각 대학에서 자율적으로 모델을 내놓고 토론하는 방식으로 마련돼야 했는데 정부는 책임지지도 않을 인기 영합적 제도를 추진했다”고 비판했다. 그는 또 세계는 학습혁명에 나서는데 한국은 아직도 대량 생산 교육 중이지만 인공지능 맞춤학습이 대량 생산형 낡은 교육을 바꿀 것으로 전망하고 “모든 학생이 동일한 문제를 푸는 교육은 10년 내에 사라질 것이므로 이해·암기는 인공지능에게 맡기고 창의성·인성 함양에 힘쓸 것”을 강조하는 등 학습혁명을 위한 비전을 제시해나가고 있다.

장관 재임 기간이 반년도 되지 않는 어느 대학 총장의 경우도 있다. 그는 수능시험 공부를 창의력을 죽이는 훈련이라고 하고 우리는 젊은이들이 죽어 가는데도 오지선다형 수능으로 간다고 한탄하면서 우선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는 수능이라고 했다. 수능에 대해서는 그 제도 ‘창시자’인 평가 전문가도 “점수로 줄 세우는 학력고사식 수능이 교육을 망치고 있다”고 개탄했다.

그들에게 “책임을 맡고 있을 때 잘하지 그랬냐?”고 반박하는 건 유치하다. 하다못해 그때는 몰랐는데 지내놓고 보니까 그렇더라고 해도 어쩔 수 없을 것이다. 그 비판을 무책임하다고 비난하는 것도 그렇다. 답답한 건 오히려 그 비판에 대해 일언반구도 없는 쪽이다. 마음이 있다면 대안의 방향이라도 부탁할 수 있다. 현실을 모르는 비판은 필요 없다는 평가절하를 하는 것일까? 신비스러운 것은, 교육 선진국 정책을 대할 때마다 그 나라 현실을 거의 모르는데도 정책마다 매우 상식적이고 당연한 듯해서 ‘그래! 우리도 저렇게 하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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