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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n쉼]충무 이순신장군과 통영누비

 

2010년 매년 2만5천명이 참가한다는 프랑스 유럽피안 패치워크 박람회 전시를 참가할 때 서양 작품은 퀼트 작품이 대다수였다. 퀼트란 천과천 사이에 솜을 넣어 원단을 만들어 이불등 다양한 제품으로 일상생활에서 사용한다. 현대는 아트 퀼트란 이름으로 예술적 표현을 하는 서양의 대표적 섬유예술 분야다.

그때 한국의 섬유문화를 보자기란 이름으로 처음 국제 섬유무대에 선보였다. 많은 관심을 받으며 성황리에 전시를 마치고 왔지만, 마음속으로는 항상 우리에게도 솜으로 넣어 만든 누비라는 섬유가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다. 그후 전시와 강연을 함께 하는 국제보자기포럼이 만들어 지면서 언제가 국제무대에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계속해서 다양한 작품을 연구했다.

오랫동안 마음먹은 통영누비를 찾아 통영으로 가는 길은 가슴이 설레였다. 통영누비는 이순신장군이 충청도, 전라도, 경상도를 합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어 임진왜란때 한산대첩을 승리로 이끌며, 왜군들을 물리칠때 수군들에게 입힌 방어용 군복이다. 무명천을 위아래로 두고 그사이에 목화솜을 넣어 0.3㎝ 간격의 잔누비로 한줄씩 한땀한땀 박음질을 하면 가위로 잘라도 올이 풀리지 않을 정도로 튼튼한 옷감이 된다.

그후 제6대 삼도수군통제사였던 이경준이 군수물자를 생산하기 위해 전국의 실력 있는 장인들을 통영으로 불러들여 공방을 일으켰고, 이를 조선시대 삼도수군통제영 12공방이라 했다. 통영 12공방은 조선시대 대표적인 전통공예 공산품을 생산했던 거점이며, 통영이란 지명도 1593년 삼도수군통제영(오늘날 해군작전본부)의 준말이다.

초기에는 군사물자와 진상품을 생산했으나 조선 후기 관영 수공업체제가 붕괴 되면서 점차 민간으로 흡수돼 통영나전칠기, 통영갓, 통영소목과 더불어 통영누비라는 명품으로 탄생했다. 통영누비는 통제영 관료 등 부유층 여인네들의 귀한 누빔 바느질 솜씨로 손에서 손으로 이어지면서 통영 여인들은 통영누비를 다 만들 줄 알게 되었다.

긴역사의 통영누비는 전통의 손누비를 현대에 알맞게 계승해 자연의 아름다움과 만든 이의 정성을 섬세하게 표현 한 것으로 최고의 예술품을 생활속에 옮겨 놓은 것으로 평판이 높다. 두겹의 천사이에 얇은 솜을 넣고 밑실과 윗실을 꼬아 잘 풀리지 않게 한줄식 촘촘하게 누빈 통영 누비는 일반적인 기계누비와 달리 질기면서도 부드러워 대를 이어 사용해도 변함이 없다. 장인의 숙련된 솜씨와 실용성을 기반으로 지금도 통영 지역 곳곳에 통영누비 공방이 활성화돼 혼수이불등 침구류와 가방, 방석, 지갑등 생활소품과 의류등을 제작하고 있다.

통영에서 방문한 통영누비 장인의 공방은 회원들이 함께 분업을 하며 다양한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다. 특히 2층에 쌓인 다양한 원단들은 통영 여인들의 삶속에 아직도 깊숙이 통영누비의 맥이 생활처럼 이어져 오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통영누비는 생활용품을 넘어서 예술 작품으로 탄생 되어야 하는 계기가 마련돼야 한다. 열정적이고 창의적인 예술가들에 의해 통영누비가 미술작품 재탄생 될 때 국제 섬유미술계에 한국의 새로운 섬유문화를 또하나 알릴 수있을 것이란 기대감이 있다.

우선은 11월에 있을 프랑스 클레르몽페랑 개인전에 통영의 아름다운 바다와 하늘을 닮은 통영누비를 소재로 한 작품을 선 보이고 싶다. 더 나아가서는 2020년에 개최될 국제보자기포럼에서는 통영누비 프로젝트가 실행되기를 소망한다.

이순신 장군의 민족혼이 살아 있고, 맑고 푸른 바다와 하늘, 먹거리가 풍부한 깨끗하고 아름다운 한려수도 통영은 유치환, 윤이상, 김춘수, 박경리, 전혁림등 별처럼 수많은 예술가를 탄생 시킨 고향답게 세계 어느곳 보다도 풍부한 문화적 자산의 보고임을 현대를 살아가는 예술가는 느꼈다. 아마도 통영행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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