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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구슬칼럼]백조와 창조의 수수께끼

 

누군가를 생각할 때 그를 상징하는 이미지가 먼저 떠오른다. 아일랜드를 대표하는 현대시인 예이츠(W. B. Yeats: 1865∼1939)의 경우 백조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예이츠는 아일랜드에서 태어나 런던에서 공부를 했다. 예이츠에게 아일랜드의 슬라이고와 걸웨이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런던에 체류할 때 고향이 그리울 때면 그는 이니스프리 호도를 즐겨 찾았는데, 이니스프리는 외가가 있던 슬라이고의 라프 길 호수에 있는 작은 섬이다. 그런가 하면 아일랜드 연극 부흥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그레고리 부인의 저택 쿨 파크가 있는 걸웨이 역시 그레고리 부인과 가까웠던 예이츠가 즐겨 찾던 곳이다.

예이츠의 흔적을 찾아 이니스프리를 거쳐 걸웨이 남쪽 고트에 있는 쿨 파크를 찾아갔을 때 그의 시에서처럼 붉게 물든 노을 가운데 백조 몇 마리가 노닐고 있었다.

저 눈부신 것들 바라보고 있으니/ 이제 내 마음이 쓰리다…/ 그들의 가슴은 늙지 않아,/ 열정과 승리가, 떠도는 곳 어디서나/ 여전히 그들과 함께 하는구나(‘쿨 호의 야생 백조들’ 일부)

예이츠 주변에는 여성들이 많이 있었지만, 특히 열렬한 민족주의자였던 모드 곤은 시인이 23세 되던 해 첫눈에 반해 수차례 청혼을 하고 거절을 당하면서도 약 30여 년에 걸쳐 사랑을 멈추지 않았던 이상적인 여성의 화신이었다. 예이츠는 32세이던 1897년 모드 곤에게 청혼을 했으나 거절당한 후 참담한 심경으로 처음 이 쿨 파크를 찾았다. 그런 후 1916년 더블린에서 발발한 부활절 민중봉기로 군인이던 모드 곤의 남편이 처형당하자 다시 모드 곤에게 청혼을 하지만 또 다시 거절당해 더욱 절망적인 심경에서 19년 전을 회상하며 쓴 시가 이것이다. 이 시에서 백조는 실연의 고통 앞에서 선 시인에게 영원불멸의 표상으로 그려진다.

한편 1923년에 쓴 ‘레다와 백조’는 신화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허리의 떨림은 저기/ 무너진 성벽과 불타는 지붕과 탑을/그리고 죽은 아가멤논을 배태한다./ 허공의 야수 같은 피에/ 그렇게 붙잡혀 그렇게 지배당했으니/ 여인은 그의 힘과 더불어 그의 지식도 얻었던가/ 그 무심한 부리가 그녀를 놓아주기 전에? (‘레다와 백조’ 마지막 6행)

문명이 2000년을 주기로 전환된다고 생각했던 예이츠는 희랍문명이나 그리스도교 문명의 기원 모두 신과 인간의 교섭으로 시작된다고 보았다. 미켈란젤로나 루벤스의 그림으로도 잘 알려져 있는 이 신화는 백조로 변신한 제우스가 아름다운 레다를 겁탈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14행 소네트 형식의 이 시는 트로이전쟁과 그 결과가 모두 이 사건에 연유한다고 보고 있다. 스파르타의 왕 틴다레오스와 결혼한 레다는 제우스의 겁탈로 헬렌을, 그리고 남편과의 사이에서 클리타임네스트라를 낳게 되는데 헬렌은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에 의해 납치되고 이는 트로이전쟁의 발단이 된다. 한편 클리타임네스트라는 트로이를 공격한 희랍군 총사령관인 아가멤논의 아내이지만 그가 트로이전쟁에서 돌아오자 간부와 공모해 아가멤논을 살해하게 되니 두 사건 모두 근원적으로 신인교섭과 관계되는 셈이다.

이 작품의 결미는 한 문명의 기원으로서 신과 인간의 교섭이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자문한다. 신과의 교섭에서 인간인 레다가 제우스의 힘뿐 아니라 전지전능한 지혜까지 물려받았다면 그 결과 또한 예견할 수 있지 않았겠는가? 그러나 위협적인 힘은 물려받았으되 지혜는 물려받지 못한 인간의 숙명을 조롱하듯 전쟁은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눈만 뜨고 나면 새로이 발사되는 북의 미사일 위협을 지켜보면서 창조의 수수께끼를 곰곰 생각해본다. 예이츠가 영원불멸의 표상으로 제시한 백조의 이미지에 인류사에 멈추지 않을 힘과 지혜의 영원한 불균형이 내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2000년을 주기로 문명이 전환된다고 믿었던 예이츠는 힘과 지혜의 갈등과 그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대를 기대했을까? 예언처럼 주어진 불화가 이제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 자못 불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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