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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기고]젊은 해공(海公)을 그리며

 

 

 

광주시는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며 독립운동가 해공 신익희 선생의 뜻을 헌양하는 ‘해공 민주평화상’을 제정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라고 했던가? 자치분권 시대를 이끄는 민선시장에게 주어진 제일의 덕목은 지역의 역사와 역사 속 인물을 챙기는 것이라 생각한다.

광주시 초월면에서 태어난 해공 선생은 학생을 가르치는 교사이기도 했다. 독립을 염원한 해공 선생은 1919년 3월 5일 제2차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해 일본에 저항하며 수많은 시민과 대한독립 만세를 외쳤다. 만세 시위 이후 해공 선생은 26세의 나이에 우리나라 독립을 위해 조국을 떠나게 된다.

1919년 4월, 상해에 모인 독립운동가들은 일제의 손길을 피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세우고 임시헌장을 공포하며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선포했다. 해공 선생은 임시정부 초대 의원과 내무총장을 맡으며 타국에서 조국의 독립과 자유를 위해 투쟁했다.

해방이 된 이후 26년 만에 조국으로 돌아온 해공선생은 민주주의 기초 확립, 민주세력 집결 강화, 책임정치 실현 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다.

1956년 5월 한강백사장 유세에서는 무수한 인파에게 지지를 받았다. 아직도 50만이 모였다는 한강 백사장에서의 대통령 후보, 해공 신익희의 사자후가 귓가에 쟁쟁하다.

“오늘날 살고 있는 이 나라는 민주국가라는 나라입니다. 백성이 제일이요, 백성이 주장하는 나라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이름은 대한민국이라 백성의 나라입니다”

하지만 해공선생은 정의와 민주주의 회복을 외치며 유세하던 중 갑작스럽게 서거했다. 그럼에도 국민들은 해공을 추모하며 185만여표를 던졌다.

해공선생은 우리나라의 자주독립과 민주화 운동을 위해 한 평생을 바쳤다. 해공선생의 정신인 자주독립, 민주주의는 100년 전 당시에는 두려움과 막막함이었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포기하지 않았고, 독립 후 민주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

현 시대에서도 평화통일을 염원하고 조금 더 나은 세상이 되길 바라며 의정발전, 평화통일, 인재양성에 힘쓰는 분들이 있다. 우리가 해공 선생을 기억하듯 해공 선생의 숭고한 뜻을 이어가는 분들을 격려하고 기억해야 한다.

광주시는 해공민주평화상 시상과 함께 탄신 125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7월 8일부터 7월 14일까지 해공기념주간을 선포했다. 초중고 학생을 초대해 해공선생에 관한 뮤지컬을 공연하고 시민들을 위해 해공 다큐와 학술대회, 해설 등 해공 선생을 널리 알리는 행사를 펼쳤다.

해공 기념 주간을 통해 해공 선생을 널리 알리고, 해공 선생처럼 자랑스러운 인물이 많이 배출되기를 바란다.

해공 신익희 생가에는 독립운동 표어가 적혀있다.

나라는 완전 독립되어야 하고(國家須完全獨立)

민족은 철저 해방되어야 하며(民族須澈底解放)

사회는 필히 평등하여야 한다(社會必須平等)

순수한 마음으로 우리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100년 전 3·1 운동이 한 청년의 가슴을 울렸듯 해공 민주평화상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가지게 하고, 그 희망이 널리 퍼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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