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실의에 빠진 청년
[생활에세이]실의에 빠진 청년
  • 경기신문
  • 승인 2019.08.29 19:55
  • 댓글 0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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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야수필가월간 수필문학 편집국장
이자야 수필가 월간 수필문학 편집국장

어느 날 새벽, 노인은 산책길에 올랐다. 텅 빈 공원에 한 청년이 한 손에 노끈을 잡고 슬피 울고 있었다.

“젊은이는 왜 울고 있는가? 내가 자넬 도와줄 수는 없지만, 자네의 말을 들어 줄 수는 있네. 어디 자네의 고민을 말해 보게나.”

그러자 청년은 잠시 망설이다가 노인에게 말을 하기 시작했다.

“어르신 저는 너무도 운이 없는 놈입니다. 제 아버진 제가 대학 시절에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암으로 세상을 떠나가셨습니다. 저는 대학을 마치지 못하고 사회에 나왔습니다. 겨우 얻은 직업이 월 88만 원 비정규직입니다. 그 돈으로는 저는 결혼도 할 수 없고, 가정도 꾸릴 수 없습니다. 저는 살아도 희망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 노끈으로 뭘 할 생각인가?”

“목을 매달아 죽기로 했습니다”

“그렇다면 잠시 나를 따라오게나”

노인은 청년을 일으켜 세워 근처 공사장의 돌무더기 옆으로 갔다.

“자, 여기 앉아서 우리 재미있는 게임 하나 하자고. 이제 자네의 불행한 일을 일일이 말해 보게나. 자네의 불행 하나하나마다 내 왼쪽에 돌을 하나씩 놓을 테니까.”

이에 망설이던 청년이 자신의 불운을 얘기했다.

“저는 집도 없고, 책가방 끈도 짧을뿐더러 부모 형제도 없습니다. 돈도 없을 뿐 아니라 애인도 없습니다”

청년이 말을 할 때마다 노인은 왼쪽으로 돌을 하나씩 쌓아 갔다. 어언 노인의 왼쪽에 돌무더기 하나가 쌓였다. 청년은 늘어놓을 말을 다 한 모양이었다. 노인은 재촉했다. 청년은 더는 할 말이 없는지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노인이 쌓아 놓은 돌무더기만 바라보고 있었다. 이에 노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이번엔 자네한테 있었던 즐거웠던 기억이나 행운을 한번 말해 보게나'”

청년이 얼른 말을 못 하자 노인이 물었다.

“자네 부모가 자넬 학대했던가?”

“아니요, 제 부모님은 저를 위해 헌신하였습니다.”

노인은 돌을 옮기며 다시 물었다.

“자넨 소아마비로 태어났는가? 자넨 언청이로 태어났는가? 자네 이는 씹지 못할 정도로 나쁜가? 자네 시력은 신문을 보지 못할 정도로 나쁜가? 자네는 입으로 말을 하지 못하는가?”

어느새 노인의 오른쪽에 또 다른 돌무더기가 생겼다. 청년은 자신의 불운을 쌓은 돌무더기보다 행운을 쌓은 돌무더기가 더 커지는 걸 보고 놀라 스스로 깨달음을 얻고 말했다.

“어르신 제가 잘못했습니다. 저는 평소 제가 불운하다고만 생각했지 이런 행운이 많은 줄은 전혀 깨닫지 못했습니다. 악착스레 살겠습니다.”

노인이 동트는 거리에 나선 시민들은 가리키며 말했다.

“저 사람들을 보게. 저들도 자네처럼 하루하루가 괴로워 죽지 못해 사는 인생들도 있다네. 그래서 부처도 인생을 고해라고 했네. 그런데도 자넨 그 노끈으로 하나뿐인 목숨을 버릴 생각인가?”

청년은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 우리의 삶은 그 자체가 비극이다. 비극을 딛고 일어서 헤쳐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지금 좌절한 그대, 지금 절망에 빠진 그대, 그대만이 그 무거운 짐 진 자가 아니다. 화복(禍福)은 동문(同門)이라 하였으니 그대의 그 고단함이 잠시 후엔 복을 불러올지도 모른다. 그러니 분발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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