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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영감은 언제 오나

 

 

 

어느 때 우리가 살아가면서 ‘영감의 순간’이 올 때가 있다. 글을 쓰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창작의 순간이라고 할 수 있다. 또는 그런 순간을 ‘接神의 순간’이라고도 한다. 무속인의 이야기가 아니라 글을 쓰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接神이란 몸에 신령이 지피는 것을 뜻한다. 말하자면 소설 속에서 주인공과 작가가 동심 일체가 되는 순간이겠는데, 소설가들은 그냥 ‘접신의 순간’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예를 들어 어느 소설가가 조선 시대에 살던 기생에 대해 소설을 쓴다고 하자. 그러면 어떤 순간에 그냥 주인공과 작가가 ‘붙는다고 한다’ 그러고 나면 글 쓰는 손가락에서 그 기생의 목소리가 나온다고 한다. 참 신기한 일이다. 막 아양 떠는 소리가 나오고, 작업실에서 글을 쓸 땐 진짜 소리까지 내면서 쓴다고 한다. 그럴 땐 작가의 뇌가 여자로 세뇌된 것이다. 여자가 주인공인 소설을 쓸 땐 진짜 그렇게 나온다고 한다. 우스개로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접신이 됐다가도 잘못하면 떨어지는 수가 있다고 한다.

“황진이를 쓰면서 굉장히 낭패였던 적이 있습니다. 한 1년쯤 고생해서 딱 붙었어요. 이제 손가락에서 여자 목소리로 막 나오게 됐습니다. 너무 기뻤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집에 갔어요. 그런데 제게 딸이 둘 있는데, “아빠~!” 하면서 뛰어나왔습니다. 다음날 작업실에 갔더니 황진이와는 다시 떨어지고 만 겁니다. 그러니까, 전날까지도 서로 잘 붙어 있었는데 딸들이 제가 남자란 사실을 상기시키고 난 후에 딱 깨져버린 겁니다” 김탁환 소설가의 말이다.

사실 많은 작가가 그렇게들 하고 있다. 오르한 파묵 같은 작가도 자기 소설 속에 필요한 소도구들을 다 모아서 박물관을 만들어 놓았다. 작가들은 왜 그러는지 다 이해한다. ‘접신’하려고 그러는 거라고 바로 이해하는 것이다. 이건 단순히 그 사람을 이해하는 차원이 아니다. 완전히 그 사람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시를 쓰는 사람들에겐 靈感이 있다. 이 영감은 마치 신의 계시를 받은 것 같은 느낌이다. 또는 창의적인 일의 동기가 되는 생각이나 자극을 말한다. 무언가 기발한 생각의 이미지나 언어가 반짝 떠오르기도 하고 스쳐 지나가기도 한다. 어느 때는 실타래 풀리듯 술술 풀리며 어떤 생각의 이미지가 막 떠오른다. 그럴 땐 얼른 기억을 저장할 공간이 필요하다. 아무리 총명한 기억력을 가졌다 해도 믿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메모하는 수밖엔 없다.

답답하게 글이 써지지 않을 때 “영감님이 왜 안 오지? 대체 어디서 코 골고 자고 있나!”라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이다. 생각처럼 뜻대로 술술 글이 잘 써진다면 아무 문제가 없다. 그러나 글이란 써 놓고 나서도 만족은 없다. 계속 퇴고를 해야 한다.

작가들에게는 힘겨운 글쓰기 과정을 해내기 위한 자기만의 습관이 있다. 어니스트 헤밍웨이의 비결은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500자를 거침없이 정오까지 끝내는 것이다. C.S. 루이스 소설가는 조직적인 방법을 택하였다. 식사, 술 등 사회활동까지 사전에 아주 꼼꼼하게 계획하며 살면서 ‘나니아 연대기’ 같은 소설을 생각해 냈다. ‘삼총사’의 저자인 알렉상드르 뒤마는 색깔에 아주 민감했다. 실화는 분홍색으로, 소설을 파란색으로, 시는 노란색으로 쓰는 걸 고집했다. 소문에 의하면, 그는 매일 아침 파리의 개선문 아래에 앉아 사과를 먹으며 영감을 얻었다고 한다. 무라카미 하루키는 새벽 4시에 일어나 5~6시간 글을 쓰는 데, 매일 같은 시간에 반복해서 글 쓰는 것은 최면과도 같고 깊은 내면으로 이끌어준다고 했다.

위대한 작가들에게도 글쓰기는 유레카가 아니다. 어느 순간 영감이 내려 한순간에 써 내려가는 것이 아니다. 안 풀릴 때가 있더라도 정해진 시간에 규칙적으로 반복적으로 써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다음 날, 다시 고뇌하며 또 써 내려가는 일이 작가인 것이다. 샤를 보들레르는 “영감이란, 매일 일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글 쓰는 일은 꾸준히 써야 한다는 것을 다시금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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