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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철

오늘 묵혀 둔 병이

당당히 생의 한 켠을 결딴낸다

비문을 파다 돌쩌귀가 떨어져 내리고

발바닥에 핏줄이 서고



딱 그만큼 내가 선 자리가

서서히 중심으로 깊어지는

딱 그만큼만



풀을 보며 생장점의 위치를 짚듯

천칭 저울의 정지를 점 찍어 두듯



명징한 공리(公理) 있다면 그것은 내가 걸어온 발자국



불개미처럼 당신의 입가를 맴돌다 붉은 물집으로 남았거나

지렁이처럼 축축한 바짓단을 끌며 비 내린 골목을 걸었거나

문장과 마음 사이를 사포질하던 모래 폭풍이 썩은 이빨이었거나



- 전형철 시집 ‘고요가 아니다’

 

 

 

 

공리(公理)의 사전적 풀이는 일반적으로 널리 통용되는 진리나 도리이다. 우리가 걷는 발자국에는 흔적이 남는다. 내가 살아온 모습과 태도와 모든 생각이 누군가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이며 그에 따른 여파로 또 다른 길이 나기도 하는 것이다. 딱 그만큼 내가 선 자리가, 서서히 중심으로 깊어지는 딱 그만큼만, 그렇게, 그리고 풀을 보며 생장점의 위치를 짚듯, 천칭 저울의 정지를 점찍어 두듯이, 그리하여 우리는 오늘 묵혀 두는 병이 생의 한 켠을 결딴내는 일이며 비문을 파다 돌쩌귀가 떨어져 내리고 발바닥에 핏줄이 서는 일임을 알아야 한다. 당신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다가가 어떠한 모습으로 남았거나 하는 그러한 일들은 사실 우리에게 있어 덫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러한 그물망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는 비록 그 발자국이 덫이라 할지라도 걸어야 한다. 그 숙명 같은 길을 받아들이며 올바르게 가는 것만이 덫이 진정 덫이 되지 않는 것이다./서정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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