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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여백] 의심스러운 병

 

 

 

 

 

소설은 작가가 등장인물 뒤에 숨어 있어서 수필처럼 친구와 마주 앉아 커피 잔 너머로 정 어린 이야기를 나누는 듯한 분위기를 주지 않는다.

고운 수필에는 이슬 모은 시냇물이 돌돌 거리거나, 옅은 커피 향이 아늑하게 번지는 느낌이 있다. 오래 전의 외국 수필에서 그런 감정을 느낀다는 것은 참으로 신선하다. 단기 4292년에 성문각에서 발행한 600환짜리 영(英) 수필인 ‘시대와 인생’은 읽을수록 감미롭다. 부식이 진행되고 있는 60년 전의 수필집이라서 더욱 그러하다. 이 수필집에는 프렌시스 베이건, 리처드 스틸, 제롬 K. 제롬 등 30명의 작품이 수록돼 있다.

수필의 시작은 프랑스의 몽테뉴로서 그의 수필이 영어로 번역돼 셰익스피어와 베이컨 시대에 소개됐다. 베이컨은 영 수필의 시조로 인생의 많은 일을 쉽고 짜임새 있게 써서 생활에 도움을 주었다. 후에 에디슨과 스틸은 자신들의 신문에 유창하고 아름다운 글로 런던 주변의 이야기를 유머를 곁들여 엮어서 수필을 하나의 장르로 굳게 세웠다.

독자는 감동스럽거나 재미있는 수필을 원한다. 특히 현재는 재미있는 글을 원하는 추세다. 그런데 130여 년 전에 제롬 K. 제롬은 그런 글을 썼으니 앞을 내다보았다 하겠다. ‘의심스러운 병’은 제롬 K. 제롬이 쓴 ‘보트 위의 세 남자’라는 책의 서두에 있는 글인데, 따로 떼어 간추리고 보완해서 수필로 발표했다.

그 내용은 근래에 큰 수술을 두 가지나 하고 다른 기관에도 고장이 있는 듯하여 몸 구석구석에 거미줄 같은 신경 줄을 깔고 탐색에 전념하는 나를 빗대어 쓴 글 같아 읽는 도중 몇 번이나 유쾌하게 웃을 수 있었다.

제롬 K. 제롬은 약 광고지에서 간에 대한 설명을 읽고 자신의 간이 좋지 않음을 짐작했다. 더 알기 위해 도서관에서 몇 가지를 읽는데 자신이 그 병에도 걸린듯하여 아예 알파벳 순서대로 병에 대해 모두 읽었다. 그리고 걸리지 않았다고 단정 지을 수 있는 병은 단 하나 가정부 무릎 병이라는 것을 알았다. 독서실에 들어갈 때는 기쁘고 건강했던 자신이 나올 때는 병자가 되어 겨우 운신하며 기어 나왔다니 책을 읽고 하나만 제외하고 모든 병이 결렸다고 낙담한 것이다.

친구인 의사에게 자신을 제공하면 한두 가지 병이 있는 보통 환자 700명보다 더 많은 실습이 될 것이라 여겨서 찾아갔다. 두 사람의 행동이 보이듯이, 손에 잡히듯이, 그러면서도 문장이 수려하고 해학적이어서 눈을 뗄 수 없다.

진찰과 처방 장면을 들여다보자.

“그래 어디가 탈인가”

“여보게 무엇이 탈인지 말하려고 자네의 시간을 빼앗진 않겠네. 인생이란 단명하니 내가 말을 다하기 전에 자네가 세상을 떠나고 말 걸세. 무슨 병이 없는가만 말하지. 가정부 무릎 병은 안 걸렸네. 왜 가정부 무릎 병은 안 걸렸는지 모르지만, 안 걸린 것은 사실이네. 그러나 다른 병은 모조리 걸렸네”라고 말하고 그것을 알게 된 경위를 설명했다. 그는 나를 끌고 내려가더니 팔목을 움켜잡아 보고 불의에 가슴을 때리고 비겁하게도 머리로 나를 받은 다음 처방을 쓰더니 접어 나에게 주었다. 나는 그것을 펴보지 않은 채 주머니에 넣고 나와 가까운 약방에 가서 주었다. 약사는 쳐다보며 그런 것은 팔지 않으니 슈퍼마켓이나 협동조합에 가보라며 도로 주었다. 처방전을 보니 어이없는 주문이 적혀있었다.

비프 스텍 1파운드, 맥주 1 파인트 이상 6시간마다, 아침마다 도보 10마일, 밤마다 11시 정각 취침 및 알지도 못하는 것을 머리에 가득 넣지 말 것. 지시대로 하였더니 결과가 좋았다. 나는 생명이 존재되어 아직도 여전하다.

벌과 나비가 향기에 이끌려 꽃을 찾아가듯, 독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글을 끝까지 읽을 수 있게 만드는 것은 작가의 능력이다. 제롬 K. 제롬은 어찌 보면 계산된 추리 소설처럼 자신과 독자의 마음을 하나로 연결해 치밀하게 전개한 듯하다. 다소 허황하기도 하나, 그럼에도 웃음과 마음의 병을 치유할 수 있게 하는 청량감이 있는 글이기에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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