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에세이]근심·걱정 1
[생활에세이]근심·걱정 1
  • 경기신문
  • 승인 2019.09.09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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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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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야수필가월간 수필문학 편집국장
이자야 수필가 월간 수필문학 편집국장

옛말에 ‘걱정 없는 사람 없다’고 했다. 겉은 번지르르해도 속을 들여다보면 나름대로 다 근심·걱정을 안고 산다.

그게 인간이라는 생각이 든다. 근심·걱정은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그림자처럼 사람을 따라붙는다. 근심·걱정에서 벗어난 인간이 있다면 그는 바보다. ‘바보’는 근심·걱정이 오직 한 가지뿐이다. 배만 부르면 바보에겐 근심·걱정이 없다. 그래서 바보는 늘 실실거리며 웃고 다닌다.

나는 그런 바보 같은 한 사람을 알고 있었다. 내 이웃에 군고구마 장수를 하는 늙은이였다. 찬바람 속에서 군고구마를 구워 팔았다. 손님이 오면 그냥 싱글벙글 웃으며 달라는 대로 집어 주었다. 행여 가난한 사람이 지나가면 뜨거운 고구마 하나쯤은 으레 쥐어주는 것으로 인심이 좋았다. 그래서 아이들도 늘 그 늙은이를 바보 취급을 했다. 솔직히 그는 바보 같은 인생을 살았다.

그러던 그에게 삶의 전기(轉機)가 왔다. 우연히 집 앞 구멍가게에서 산 복권이 당첨된 것이다. 난생처음으로 그의 손에 3억이란 거금이 돌아왔다. 그는 고구마 장수를 집어치웠다. 작지만 아담한 집도 하나 샀다. 그래도 남아도는 돈은 방바닥 장판지 아래 몰래 묻어 두었다.

그에게 돈이 있다는 걸 알자 제일 먼저 혈육을 나눈 누나들이 달려왔다. 평생 사람 취급을 안 하던 누이들이 전에 없이 살가워졌다. 하나 같이 살기가 빠듯한지라 눈물을 흘리며 구원을 청했다. 아무리 바보 같은 늙은이였지만 그게 다 수중에 든 돈 탓이란 걸 알게 됐다.

이제 그는 그 돈을 지키기 위해 집 밖을 모르고 살게 됐다. 주야장천 돈이 묻힌 방구들을 안고 살았다. 잠시라도 방을 비우면 여우 같은 누이들이 그 돈을 훔쳐 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어디 누이들뿐이던가. 너나없이 손을 내밀었다. 이웃 사람들도, 자선단체에서도 수시로 그의 집 초인종을 눌러댔다. 그는 방문을 굳게 잠갔다. 그것도 모자라 방문 앞에 또 다른 문을 만들어 세웠다. 그런데도 밤마다 가위에 눌려 자지러지는 소리로 꿈에서 깨어났다. 그리고는 방바닥을 더듬었다. 누이들은 줄기차게 그의 집 문턱을 드나들었다. 아무리 꼬드겨도 이 우직한 바보 늙은이는 그들의 꾐에 넘어가지 않았다. 이제 그는 바보가 아니라 영악한 돈벌레가 됐다.

돈이 자신을 지배하기 시작하자 그는 서서히 병이 들었다. 상대방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하려는 보호 본능이 발동하자 불안하기 그지없었다. 그뿐만 아니었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적으로 보였다. 그래서 밤에도 잠이 오지 않았다. 주방에서 허겁지겁 배를 채우는 시간 외에는 오직 돈을 지키기 위해 방안에만 있었다.

이제 병은 마음에서 육신으로 옮겨 갔다. 오랜 불면증으로 그의 몸뚱이는 서서히 멍들어갔다. 소화불량에 불안증에 공포증에…. 이 모든 증상이 한꺼번에 덮쳤다. 돈을 알기 전에는 느껴보지 못한 무서운 병들이 도둑떼처럼 그의 육신을 덮쳤다. 그는 먹는 것도 잊었다. 약방을 찾아가 약 한 봉지도 입에 털어 넣지 못하고…. 그해 여름,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밤에 숨을 거뒀다. 그의 나이 67세였다.

바보 같은 늙은이의 시신은 죽은 지 열흘이 지나 옆집 주민들의 신고로 알게 됐다. 그가 방바닥에 숨겼던 그 많은 돈은 신고를 받고 찾아온 경찰들의 눈에 발견됐다. 그 뒤 그 많은 돈이 어디로 갔는지 그 행방을 듣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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