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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훨덜린을 읽는 밤

 

 

 

훨덜린을 읽는 밤

                                   /엄하경

훨덜린이 깨어 있는 신성의 밤에

널브러진 나의 시를 본다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 건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그가 말한다

네카 강변 돌계단 틈에 피어 있는 작은 제비꽃

그 반짝이는 詩앗이 올려다 보며 말한다

그냥 바라보기만 해도 짠하고

아! 탄성이 절로 나오는 그 한 순간이 시라고

보태지 말고 에두르지 말고

보이는 대로 가슴에 닿는 대로

조용히 받아 적기만 하라고

이 궁핍한 시대에도

시인의 직무는 다만 시 쓰기라고

 

 

누군가 밤에 홀로 깨어 훨덜린을 읽는다. 시인의 숭고하고 내밀한 언어와 혁명기 유럽의 궁핍하고 암울한 고통을 읽는다. 그리고 시인이 감내해야 했던 통각에 직접적으로 닿았을 때, 그 누군가는 비로소 ‘훨덜린-되기’를 실현한다. 그는 그가 ‘신성의 밤’이라 말한 것은, 훨덜린 시가 발산하는 뚜렷한 의미들과 시대상이 자신의 내면을 관통했기 때문이다. 훨덜린은 “어둠의 나라가 거대한 폭력으로 도래한다면, 우리는 책상 위의 펜을 집어던지고, 신의 이름으로 거대한 고난의 장소로 향해야 하리라. 그곳이 우리를 가장 필요로 할 테니까”라고 ‘빵과 포도주’에서 시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밝힌 바 있다. 엄하경 시인이 썼듯, “시인이 시를 쓰지 않는 건 / 명백한 직무유기라고 그가 말한다”는 문장의 의미는 여기서 찾을 수 있겠다.

/박성현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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