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희의 미술이야기]살바도르 달리의 ‘성 앙투안의 유혹’
[정윤희의 미술이야기]살바도르 달리의 ‘성 앙투안의 유혹’
  • 경기신문
  • 승인 2019.09.17 1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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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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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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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바도르 달리의 1946년 작 ‘성 앙투안의 유혹’은 아주 기묘하고 매력적인 그림이다. 하기는 달리의 작품 태반이 그의 꿈과 몽상 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그리고 있으니, 이러한 작품들 대부분이 매우 기묘하다고 할 수 있다. 달리는 괴상망측한 형태를 고안해 내는 일에 관한 한 초인적인 힘을 지닌 인물이었고, 대중들은 달리가 쏟아내는 꿈과 환상 속 장면들에 경악을 금치 못하면서도 그의 폭발적인 상상력에 감탄하곤 했다.

그중에서도 ‘성 앙투안의 유혹’은 프랑스의 대문호 귀스타프 플로베르의 동명 작품에서 영감을 얻어 그린 것이다. 화면의 왼쪽 하단에는 벌거벗은 성 앙투안이 앙상한 십자가를 들고 절규에 가까운 저항을 하고 있다. 그의 몸은 손에 쥐고 있는 십자가처럼 앙상하기만 하다. 그가 십자가를 쳐들며 격렬히 저항하고 있는 대상은 성 앙투안이 바라보고 있는 환영이다.

말과 코끼리의 짐승 떼가 그를 향해 걸어오고 있고, 그것들은 이교도들의 신전,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나체의 창녀와 여인의 상반신을 등에 짊어지고 있다. 앙상한 성 앙투안의 몸에 비하면 여인의 나체는 매우 육감적이며, 그 포즈는 도발적이다. 짐승들의 다리는 길게 늘어져 있어 이들은 구름을 스치며 공중을 걷고 있다. 짐승 떼는 매우 위협적인 분위기를 띠고 있고, 선두에 위치한 백마는 앞발을 들고 깃을 휘날리며 그를 곧 짓밟을 듯한 기세를 하고 있다.

플로베르의 원작에서는 이 장면을 이렇게 그리고 있다. ‘난데없이 먼저 물웅덩이가, 이어서 창녀, 신전의 모퉁이, 병사의 얼굴, 뒷발로 일어선 두 마리의 흰말과 함께 이륜마차가 공중을 지나갔다. 이 이미지들은 흑단 위의 진홍색 그림처럼 어둠과 분리되어 갑작스럽게, 간헐적으로 나타났다. 그 움직임이 빨라졌다. 이미지들은 어지러울 정도로 줄지어 지나갔다. 어떤 때는 멈추어서 점점 희미해지다가 사라졌다... 이미지들이 늘어나 그를 에워싸고 괴롭혔다. 형언할 수 없는 공포가 엄습해 그는 복부에서 타는 듯한 통증 외에는 아무것도 느끼지 못했다. 머릿속은 야단법석인데도 불구하고 그는 세계와 자신을 분리하는 엄청난 침묵을 깨달았다’ - 인용 : 김계선 역, ‘성 안투안의 유혹’, 2012년

실제로 존재했었던 성 앙투안이라는 인물의 수행 과정을 담은 이 작품은 굉장히 강렬한 인상을 지니고 있다. 성 앙투안은 수행 초기 온갖 환영에 시달리며 고통을 받았다고 하는데, 플로베르의 거침없고 숨 가쁜 문장들은 그러한 환영들을 생생하게 전하고 있다. 성욕과 물욕, 온갖 환영들을 맨몸으로 물리치는 한 남자의 여정은 예술가들에게 큰 영감을 주는 주제였는지, 플로베르와 살바도르 달리 말고도 수많은 이들이 이 주제를 다루었다.

일찍이 피터 브뤼헐 역시 이 주제로 그림을 그렸고, 이는 플로베르가 이 주제의 작품을 시작하게 한 영감의 원천이 되었다. 폴 세잔 역시 이 주제의 작품을 여러 점 남겼다. 다만 세잔의 작품의 경우에는 성 앙투안이 겪는 고통보다는 ‘목욕하는 사람들’이라는 주제를 오래 연구한 끝에 일군 그의 농익은 인체의 표현이 잘 드러나 있다.

이에 반해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서는 성 앙투안이 겪고 있는 고통이 매우 잘 전해진다. 나약한 남자의 존재가 겪는 충동과 고통을 다뤄왔던 달리의 경향과 이 소설의 분위기는 매우 잘 맞아떨어진다. 하늘색과 황금색이 묘하게 어우러진 공중을 횡단하고 있는 앙상한 짐승의 다리들은 그것을 표현한 선들이 얼마나 유려한지 아름답게 느껴질 정도이다.

위협적인 짐승 떼의 기세와는 달리 짐승의 다리들은 유려함을 뽐내며 대지 위에 사뿐히 놓여있고, 그 발치에는 인간들이 매우 작은 미물처럼 그려져 있으며, 대지는 황금빛 노을과 함께 그것들의 그림자를 머금고 있다. 하늘과 대지가 이루고 있는 차분하고 낭만적인 분위기에 비추어보면, 성 앙투안이 겪고 있는 고군분투나 짐승들의 위협적인 자세는 그저 풍경 속의 일부처럼 담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비록 실재하지 않는 꿈과 공상 속의 일들을 그린 달리였지만 대상을 그려내는 그의 솜씨는 매우 정교하고 사실적이다. 벽돌로 집을 쌓듯 그는 이 모든 세세한 형태와 움직임을 구축했다. 그의 작품에서 인체는 잔혹하게 뒤틀려있거나 변형되어 있기 일쑤였지만, 작가 특유의 감성이 넓게 펼쳐진 배경 안에서 그것들은 차분하게 승화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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