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형색색]깨어있어야 하는 이유
[형형색색]깨어있어야 하는 이유
  • 경기신문
  • 승인 2019.09.18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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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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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길수원예술단체총연합회장
이영길 수원예술단체총연합회장

영국의 ‘테이트 모던’은 1981년 공해문제로 문을 닫은 뱅크사이드 화력발전소를 밀레니엄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2000년 5월에 건축가 헤르조그와 드 뫼론(Herzog & De Meuron)이 재탄생시킨 영국이 자랑하는 현대 미술관으로서 20세기를 대표하는 작가인 피카소와 자코메티, 마티스, 르네 마그리트, 백남준 등 거장들의 다양한 작품을 전시하고 있다.

지금에야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하고 있지만 개관 전의 상황은 전문가를 비롯한 사회전반의 분위기는 맹비난의 일변도였다. 비견(比肩)하자면 스페인의 빌바오가 ‘구겐하임 빌바오’를 특색 있고 번듯하게 지어서 관광객들을 유치하고 경제적 가치를 생산하는 반면, 런던의 그것은 도시의 흉물인 발전소를 뜯어고쳐 미술관으로 만들려한다며 발상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이유에서 였다.

이렇듯 국가적 골칫거리였던 폐공간이 개관과 함께 대영박물관과 내셔널 갤러리의 아성을 무너뜨리고 영국을 대표하는 미술관으로 자리매김하여 연간 500만 명이 넘게 찾는 세계 속의 미술관으로 우뚝 서게 될 것이라는 것을 누가 상상했겠는가!

살펴보면 우리는 이 공간이 도시재생과 문화재생의 성공모델로 자리하기까지 몇 개의 키워드가 존재한다는 것을 간파하게 된다. 공간은 하드웨어를 제외한 모든 정형화된 분위기를 철저하게 지양(止揚)했고, 190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차별화된 패러다임을 적극지향(志向)했으며, 폐업신고가 끝난 발전소를 새롭게 활용함으로써 영국을 오늘에 있게 한 산업혁명의 상징성과 역사성을 계승했다는 점이다.

이는 오래된 것을 버리고 취함에 있어서 유연하게 선택한 영국사회의 실용주의(實用主義)문화가 기저에 깔려있음을 엿볼 수 있다는 점에서 그 성과와 의미를 찾을 수 있다하겠다.

요즘 들어 우리나라는 사회 각 분야에서 다양한 도시 혹은 문화재생프로젝트들이 진행되어지고 있고, 이를 진행함에 있어서 벤치마킹이라는 이름으로 해외와 국내를 막론하고 관련 국가와 도시가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나 핑크빛 청사진을 제시하며 시작된 프로젝트 다수는 진행과 운영과정에서 많은 시행착오를 경험한다. 무늬만 바뀐 채 출발점과 종착(終着)점이 다른 결과물로 나타나는 게 다반사고, 어렵게 만들어진 재생공간은 이 또한 명맥만 유지한 채 가뿐 숨고르기를 해야 하는 게 현실이다. 그런 의미에서 과거역사를 중심으로 현재와 미래의 키워드를 잘 연결하고 엮어낸 영국의 ‘테이트 모던’의 성공사례는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결코 적지 않다.

장자(莊子) 추수(秋水)편에 보면 ‘한단지보(邯鄲之步)’라는 말이 나온다. 전국시대 연나라의 한 젊은이가 조나라 한단사람들의 걸음걸이가 아름답다는 말에 이를 배우려 먼 길을 마다않고 한단에 갔지만 결국은 배우지 못하고 본인의 걸음걸이마저도 잊어버리게 됐다는 유래를 갖는 말이다. 벤치마킹도 좋고 새로운 것을 담아내는 것도 좋다. 그러나 남의 것을 흉내 내기 급급해 하다가 나의 가치를 제대로 보지 못하고 그 주체성마저 잃게 된다면 얼마나 우습고 슬픈 일이 되겠는가! 남의 일에 밤과 대추를 논하고 싶지는 않지만 다만 그런 우(愚)를 반복해서 범하지 않기를 희망할 뿐이다.

우리가 오늘도 해묵은 고전을 꺼내들고 그 의미와 가르침을 되새기는 이유는 성공을 위해서는 빠른 속도보다 올바른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고, 정체성을 찾기 위해선 좀 더 유연한 사고와 거시적인 안목으로 치우침 없는 통찰의 시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항해하는 배의 선장이 지도를 바로 보지 못하면 목적지를 잃고 정박하거나 끝내 바다 위에서 표류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원하는 결과를 얻기 위해선 냉철한 판단력으로 매순간 깨어 있어야 한다. 우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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