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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력 피해생존자의 현실 극복 일기

비가 내리던 2008년 7월 14일
일상의 폭력에 맞닥뜨린 언니…
내밀한 의식·현실을 정면 주파

 

 

 

신동엽문학상, 한겨레문학상을 수상하고, 섬세한 감수성과 거침없는 서사로 한국문학에서 주요한 자리를 획득한 최진영 작가가 소설 ‘이제야 언니에게’를 출간했다.

주인공 ‘이제야’의 일기 형식으로 전개되는 작품은 성폭력 피해생존자의 내밀한 의식과 현실을 정면으로 주파한다.

작품은 비가 내리던 2008년 7월 14일로 시작된다. 당시 제야는 학교 수업을 마치고 이어폰으로 노래를 들으며 동생 ‘제니’와 사촌동생 ‘승호’와의 아지트인 버려진 컨테이너로 향했다.

제니와 승호가 오기를 기다리던 제야는 뜻밖에도 같은 동네에 살면서 늘 다정하고 친절하게 굴던 당숙을 맞닥뜨리게 되는데, 당숙은 거기서 돌변해 제야를 성폭행한다.

그날 이후 제야는 당숙이 자신이나 제니에게 또다시 같은 일을 저지를지 모른다는 생각에 산부인과와 경찰서를 홀로 찾아가며 침착하게 대응하지만, 부모를 비롯한 일가친척들의 소극적인 태도와 전염병에 걸린 듯 취급하는 친구들의 냉소적인 행동으로 결국 버려지듯이 멀리서 혼자 사는 이모와 함께 지내게 된다.

제야가 직접 발화하는 일기 형식과 삼인칭 관찰자 시점으로 번갈아 서술되는 ‘이제야 언니에게’는 제야의 시간을 3부로 나누어 진행한다.

1부에서는 제니와 승호와 집 옥상에 올라 밤하늘의 카시오페이아 성좌를 구경하며 ‘개똥벌레’를 부르던 조용하고 평범하던 제야의 유년을, 2부에서는 어떻게든 제야를 감싸 안으려는 이모와 함께 살며 부딪히고 넘어지는 제야의 모습을, 3부에서는 검정고시에 합격한 후 대학에 진학했지만, 과거로부터 계속되는 고통과, 미래를 생각할수록 극심해지는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현재를 찾아나가는 제야를 보여준다.

독자가 제야의 인생을 제야와 같은 시선으로 목격하게 하는 저자의 이러한 방식은 일기장을 보여주듯 인물의 세밀한 내면을 독자와 공유하고 나아가 제야의 이야기를 모두의 이야기로 확대함으로써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 채 누군가에게 행하거나 방관하고 있는 일상의 폭력을 대면하게 한다.

작품을 집필하면서 여성인 자신조차도 내면에 축적된 가해자의 언어와 행동방식이 얼마나 농후했는지 새삼 발견하고 깊은 반성과 슬픔으로 제야의 마음을 상상했다는 저자는 “방관과 의심 속에서 홀로 버티는 사람이 많다는 사실을 모르지 않기에, 제야에게 위로가 될지도 모를 장면을 쓸 때는 제야의 고통을 묘사할 때만큼 주저했다”고 집필 후기를 밝히며, 소설 곳곳에서 뭉근하지만 단호한 진심을 깊이 있는 문장으로 전달한다.

사회의 어두운 부분을 외면하지 않고, 삶이 무서워서 얼어붙은 사람에게 서슴없이 다가가서 그들의 입장에서 발화하는 저자의 빛나는 용기가 소설을 읽는 내내 독자의 마음을 등대처럼 비출 것이다.

/최인규기자 choiink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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