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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연칼럼]도덕적인 사람의 이별법

 

 

 

필자가 딸에게 신경 쓰는 것은 딱 하나 인성이다. 교육의 힘인지, 타고난 성품인지 딸아이는 주위 사람들이 인정하는 천사 같은 아이, 그리고 난 이런 착한 딸이 자랑스럽다.

그러나 니체의 ‘권력에의 의지’를 읽다보면 착한 딸이 마냥 자랑스럽지만은 않게 된다. 니체는 착한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고 악하단다. 나쁜 사람이 될 수 있을 만큼 강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착한 사람인 것이고 나쁜 짓을 하지 않는 것은 그것이 나쁘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로부터 거절당하고 싶지 않아서 즉 악행을 저지를 만한 용기가 없어서 라는 것이다. 또 착한 사람은 타인에게 반감을 일으키는 말을 하지 않기 위해 필연적으로 거짓말을 하는데 이유는 자신이 안전하기 위해서란다. 그야말로 우리가 생각하는 착함에 대한 니체식 도발이다.

심리학에서도 이러한 심리적 역동을 반동형성(reaction formation)이라는 기제로 설명한다. 억압된 감정이나 욕구가 나타나지 않게 정반대 행동을 하는 것으로 ‘미운 놈 떡 하나 더 준다’는 속담이 이에 해당한다. 미운 사람을 밉다할 용기는 없고 마음이 불편할 때 반대로 착한 행동을 함으로써 불안을 해소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착한 사람은 도덕적인 사람으로 비춰질 수 있으나 자신답게 사는 것이 아니다. 정의롭고 도덕적인 인간이 된다는 것은 무엇일까? 도덕은 선(善)과 관련하고 정의는 올바름과 관련한다. 이 둘은 덕(德)에 속하지만 그렇다고 선한 것이 다 옳은 것이라고 할 수 만은 없다. 그래서 간혹 우리는 이 둘이 갈등을 일으킬 때 상당히 고민에 빠진다. 그래서 언제부터인가 나는 선택의 기준을 ‘나다운 것’에 맞춘다. ‘나답다’는 정체성과 관련이 깊다. 정체성은 그 사람의 가치관이며 그 가치를 지향하려는 행동과 책임까지 포함한다. 그러나 정체성은 고정된 것은 아니고 교육이나 문화 혹은 삶의 어떠한 사건으로부터 변형되기도 완전히 다른 것으로 전환되기도 한다. 작년의 ‘나답다’가 올해의 ‘나답다’와 꼭 같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나답다’에는 도덕과 갈등을 일으키는 요소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가정이 있는 남자와 사랑에 빠졌던 한 내담자의 사례다. 사랑은 자신이 예상했던 시간, 꿈꿔왔던 장소, 소망했던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내담자 역시 그랬던 것 같다. 그 사랑의 끝은 결별이었다. 그녀는 상대가 매우 도덕적인 남자였기에 가정을 버릴 수 없었을 것이라고 애써 에둘렀다. 그렇지만 결론은 헤어짐을 당한 꼴이었다. 남자는 그녀와의 사랑이 도덕적인 삶을 살고자 하는 ‘나다움’과 상충할 뿐만 아니라 이 사랑의 형태가 비도덕적 행위이기에 고민했으며 ‘사랑하기에 헤어지는 것’이라 했다고 한다. 이성적이고 도덕적인 판단이다. 자신과 가정에 책임 있는 행동이었고 성숙한 결정이었다. 하지만 그 남자의 사랑의 감정이 진짜였다면 비겁하고 위선적이다. 불륜을 미화하거나 남자의 결정을 폄훼하려는 것이 아니다. 이 사례를 통해 위선적 착함에 대해 생각해 보자고 하는 것이다.

두 가지 상반된 가치가 충돌할 때 한 쪽을 선택하면 다른 한쪽은 내가 감당해야 하는 포기이다. 남자는 가정을 지키고 도덕적인 사람이 되었지만 사랑을 잃고 고통을 오롯하게 감내해야 하는 선택을 했다. 사랑하기에 헤어진다는 명분으로 말이다. 어느 쪽을 선택하든 선의의 거짓말이라는 명분으로 자신을 보호해서는 안 된다는 니체의 말을 떠올려보면 그 남자는 명분 뒤에 숨은 비겁자이다.

도덕적 딜레마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선택을 했다면 선의의 거짓말로 포장해서는 안 된다. 실은 용기 없어 도망가면서 사랑하기에 보낸다는 거짓말로 착한 사람이 되고자 해서는 안 된다. 그것이 도덕적인 사람의 이별법이고 ‘그다움’이다. 몸과 마음이 따로따로인 도덕보다 어찌할 수 없는 선택에 대해 상대에게 진솔해야 자신만 안전하고자 하는 위선적인 착함을 버릴 수 있다. 위선적인 착함은 형용모순이다. 착한 사람은 위선적일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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