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성연쇄살인사건의 유력한 용의자인 이춘재(56)씨가 화성사건을 제외하고도 5건의 살인사건, 30여건의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자백하면서 이들 범죄는 대체 무엇인지에 대해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씨가 자백한 범죄에 대해 경찰이 수사 중이라는 이유를 들어 자세한 언급을 꺼리는 가운데 화성사건을 전후한 시기 발생한 미제사건 중에는 이씨의 범행으로 의심할만한 사건이 일부 존재한다.

일단 이씨가 자백한 모든 범행은 그가 군대에서 전역한 1986년 1월부터 처제를 성폭행하고 살해해 붙잡힌 1994년 1월까지 이뤄졌다.

먼저 화성사건 외에 5건의 살인사건은 화성 일대에서 3건, 충북 청주에서 2건이 발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기와 장소를 고려해 볼 때 이 씨가 저지른 것으로 가장 의심되는 사건은 1987년 12월 24일 여고생이 어머니와 다투고 외출한 뒤 실종됐다가 열흘가량 뒤인 1988년 1월 4일 화성과 인접한 수원에서 속옷으로 재갈이 물리고 손이 결박된 상태로 숨진 채 발견된 사건이다.

이 사건은 범인이 피해자를 결박하는 데에 속옷을 사용했다는 특징을 보이는데, 이는 화성사건의 ‘시그니처(범인이 자신의 정체성을 성취하기 위해 저지르는 행위)’와 유사하다는 점에서 이씨가 자백한 살인사건 가운데 하나일 가능성이 있다.

더욱이 이 사건은 화성사건이 한창 벌어지던 시기에 발생했다.

6차 사건과 7차 사건 사이다.

당시 경찰은 다른 용의자를 조사했지만, 담당 형사가 용의자를 폭행해 숨지게 하면서 수사가 흐지부지된 것으로 알려졌다.

7차 사건 발생 10개월여 뒤인 1989년 7월 3일 또 다른 여고생이 수원시 권선구 오목천동 야산 밑 농수로에서 흉기에 찔려 숨진 채 발견된 사건도 이씨의 범행리스트에 있을 수 있다.

이 사건은 발생지역이 화성이 아니라는 점, 피해자의 손발이 묶이지 않은 점 때문에 화성사건에 포함되지 않았으나, 시기적·지리적으로 화성사건과 닮아있다.

이를 비롯해 당시 화성에서 연쇄성폭행사건이 발생했고, 성폭행 사건의 범인이 화성사건과 연관이 있다는 내용의 ‘연쇄살인사건에 있어서 범인상 추정에 관한 연구’ 논문을 지난 2011년 발표한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피해자들의 진술을 종합한 결과 범인은 165㎝ 정도의 키에 20대 초중반으로 추정된다고 논문에서 밝혔다.

이는 당시 이씨의 신체조건, 나이와 비슷하다.

이씨의 신장은 170㎝가 채 안 되고 1988년 당시 25세였다.

이 씨가 청주에서 저질렀다는 2건의 살인은 그가 청주로 이사한 1993년 4월부터 처제를 살해한 1994년 1월 사이 발생한 미제사건들을 찾아 비교해 볼 필요가 있다.

다만, 현재까지 당시 보도된 기사 등을 통해 알려진 미제 살인사건은 확인되지 않는 점에서 암수범죄(수사기관에 드러나지 않은 범죄)일 가능성이 있다.

이 씨가 자백한 30여건에 이르는 성범죄의 경우 오 교수의 논문에 언급된 화성연쇄성폭행사건이 일부 포함됐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건은 이씨가 군대에서 전역한 직후인 1986년 2월부터 화성 1차 사건 직전인 같은 해 9월까지 7개월 사이에 당시 화성 태안읍 일대에서 집중적으로 발생한 7건의 성폭행 사건이다.

범인은 한적한 논길·야산 주변을 지나던 여성을 숨어서 지켜보고 있다가 갑자기 뒤에서 나타나 손으로 입을 막고 흉기로 옆구리 등을 찌르며 위협했다.

그는 피해 여성을 수십∼수백m 끌고 가 성폭행했다.

범행 중에는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욕설을 내뱉고 범행 후에는 가방을 뒤져 돈을 강탈했다고 한다.

또 범행 과정에서 피해자의 옷가지로 재갈을 물리거나 손을 묶었는데, 이 또한 화성사건과 비슷한 패턴이라고 할 수 있다.

잦은 성폭행과 성폭행 미수 사건은 화성을 무대로 본격적인 살인 행각을 벌이기 이전에 이뤄진 ‘살인 학습’ 또는 ‘예행연습’의 과정일 수도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현재 경기남부지방경찰청과 청주 흥덕경찰서·청원경찰서 문서고에서 이씨가 자백한 범죄 당시의 사건 기록을 살펴보고 있다”며 “이 작업이 진행 중이어서 이씨가 자백한 범행들에 대해서는 현재 자세히 밝힐 수 없다”고 말했다.

한편 이씨는 1994년 1월 처가 2살배기 아들을 남겨두고 가출한 데 대한 보복으로 처제(당시 20세)를 성폭행하고 둔기로 수차례 때려 살해했다.

이씨는 이 혐의로 무기징역을 확정 선고받아 현재까지 부산교도소에 무기수로 수감 중이다.

/박건기자 90vir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