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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논단]아인슈타인이 본 평가의 공정성

 

여기 고집스러움이 엿보이는, 나이 지긋한 한 남자가 쓸데없이 큰 책상 앞에 앉아 있고 그 앞으로는 여러 동물들이 나란히 정렬해 있다. 맨 왼쪽엔 언제든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오를 수 있는 새 한 마리가 단정히 앉아 있다. 그다음은 원숭이, 나무타기 명수인 그의 공인실력을 넘볼 동물은 앞으로도 나타나지 않을 것 같다. 펭귄은 쓸모도 없을 것 같은 날개를 달고 잘 걷지도 못하는 둔재 같지만 물속에서는 자유자재로 움직이고 극한기후를 두려워하지 않는 늠름한 녀석이다.

코끼리의 재능은 어떤 것일까? 어느 유아에게 물어봐도 이 설명보다 훨씬 더 좋은 답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물고기는 여기에서도 수조 안에 들어 있지만 아무도 왜 밖으로 나오지 않느냐고 항의하지 않는다(그들 중에 사람도 있었다면 수조에서 나와야 공정하다고 주장했겠지?). 거구를 웅크린 바다표범은 매우 둔한 것 같지만 물에만 들어가면 무서운 힘으로 헤엄칠 수 있다. 맨 끝에는 우리의 반려동물 개 한 마리가 서 있다. ‘엉뚱한 일을 시키진 않겠지?’ 생각하며 인간을 신뢰하고 안심하는 표정이다.

동물들 뒤에는 나무 한 그루가 서 있다. 남자는 여러 동물들을 일부러 그 나무 앞으로 불렀다. 예상은 빗나가지 않았다. 그는 공정성을 기하기 위해 모두 저 나무에 올라가는 시험을 치르겠다고 발표했다.

아인슈타인은 그들을 변호한 적이 있다. “누구나 천재다. 하지만 물고기의 능력을 나무타기로 판단하면 그는 평생 자신을 바보로 여기며 살아간다” 위 얘기는 아인슈타인의 생각을 카툰으로 바꾼 것이다.

절대복종과 획일적·주입식 교육을 극도로 혐오한 이 천재의 견해를 대부분 당연한 것으로 여긴다. 불행하게도 극소수 사람들만 아직도 그 말을 못 들은 척하고 있다. 그가 살아 있다면 그 또한 자신을 외면하는 사람들을 외면할 것이다. 어디 한번 두고 보라는 심사였을 것이다.

대통령이 대입제도 전반을 재검토하라고 지시했다. 대입제도가 “공평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고 생각하는 국민이 많다는 것을 직시하라”고 주문했다. 언론은 으레 그렇다. 또 바꾸느냐면서 ‘대혼란’, ‘당혹’이 현장 반응이라고 했고 교육단체들의 유사한 반응들을 굳이 상이한 견해로 구분해 놓았다. 특징적인 반응은 ‘수시 축소’→‘정시 확대’가 될 것이라는 예측이었다. 수능시험 중시 정책이 자신들에게 유리한 사람들은 아주 좋은 기회를 만났다고 여겼을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간단하게 일찌감치 정리되고 있다. 장관이 나서서 학생부종합전형의 투명성과 공정성을 높일 수 있는 방안을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마련하겠다고 한 것이다. 그는 또 정시와 수시 전형 비율을 당장 조정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단언해버렸다.

정시 확대를 원했던 측에서는 당장 “변죽만 울린 대입개편 논의”라고 했고 심지어 ‘현행 제도의 보완’에 그치는 것은 대통령에 대한 ‘일종의 항명’, ‘하극상’이라는 반응도 보였다.

그들은 학부모와 학생들이 수행평가 점수나 학생부의 정성적 기록의 공정성을 의심하고 있다는 것을 강조한다. 공정성 면에서 정시가 낫다는 것에 대다수 국민이 동의하는데도 왜 정시 확대에 반대하느냐고 항의한다. 수능은 교육성과를 객관적으로(적나라하게!) 알려준다고 역설한다. 저 동물들의 능력은 나무타기 한 가지로만 평가해야 공정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정시 지상주의자들은, 저 카툰은 일부러 갖가지 동물을 등장시켰지만 평가대상이 수십만 명이라 해도 고르기 시험 한 번으로 창의력까지 평가해낼 수 있다고 주장한다. 가히 객관식 맹신주의라 해도 좋겠다.

대입제도는 여기까지 오는 데에도 수많은 논의를 필요로 했다. 갈 길이 아득하다고 해서 수능 만능주의로 후퇴할 수는 없다. 분명히 ‘금수저’에 속하는 자들 중에는 속이 끓고 뒤집어지게 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다고 해서 저 빛나는 학생들을 불러 모아 만인의 주시 속에, 일시에 나무타기를 시켜서 속 시원하게 결정하자고 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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