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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윤희의 미술이야기]살바도르 달리의 ‘만종’에 관한 해석

 

 

 

살바도르 달리가 장 프랑수아 밀레의 ‘만종’이라는 작품에 왜 그토록 집착했는지를 유추하는 일은 매우 흥미롭다. 프랑스 농촌의 풍경을 배경으로 부부가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을 담은 경건하고 목가적인 이 작품을 달리는 허무맹랑하고 발칙한 시선으로 재해석하고 각색했기 때문이다. 그가 이 작품에 얼마나 집착을 했는지 ‘만종’을 모티브로 삼았거나 일부 소재로 삼은 작품만도 족히 열 개는 넘는다.

1933년쯤 완성한 ‘황혼의 격세유전’에서는 남자의 얼굴이 해골로 대체돼 있다. 원작에서는 여인의 뒤에 놓여있던 수레가 해골이 쓴 모자와 연결돼 있다. 달리는 그림에 등장하는 해골이 어머니에게 정욕을 품은 아들이며, 해골의 모자와 연결된 수레는 성적 환상이라고 말했다. 원작의 경건함을 추종하던 관객들은 그의 황당한 해석에 경악하지 않을 수 없었다.

1933년에 완성한 ‘밀레의 만종에 대한 건축적 해석’에서는 더욱 기이한 형태가 등장한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흰 덩어리 두 개가 부부의 모습을 대체하고 있는 것이다. 덩어리는 흰 우유로 추정되는데, 달리의 작품에서 우유는 성적 욕망의 상징물로 종종 등장했기 때문이다. 1935년 작 ‘밀레의 만종에 관한 고고학적 해상’에서는 원작에 등장하는 부부의 모습이 낡고 부식된 유적으로 등장한다. 다행히도 이 작품에서만큼은 원작이 주는 경건한 느낌이 심히 훼손되지 않은 듯하다.

‘만종’의 해석에 몰두했던 달리는 해변을 걷다가 가다 어슷하게 놓인 두 개의 돌을 발견해도 즉각 ‘만종’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뿐만 아니다. 달리의 아내 갈라의 초상에도 ‘만종’은 벽에 걸린 액자로 등장했고, 레닌의 뒷모습이 엿보이는 음산한 방의 입구 위쪽에도 ‘만종’은 액자로 걸려 있었다.

달리는 어렸을 때부터 밀레의 ‘만종’에 자주 볼 수 있었고, 또 이 작품을 좋아했다고 한다. 학교에서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멍하니 딴 생각을 하면서 으레 그는 교실 벽에 걸린 이 작품을 바라보곤 했다. 사람들의 일상 곳곳에서 볼 수 있었던 작품인 만큼 ‘만종’은 그와 그 시대 사람들의 관념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었던 작품이었다.

1938년 달리는 ‘밀레의 ‘만종’에 얽힌 비극적 신화’라는 책을 집필한다. 이 책에서 ‘만종’에 대한 자기만의 해석을 쏟아놓았다. 이 책이 발간된 지 이십 년 후, 실제로 밀레의 ‘만종’에서 두 부부 사이에 놓인 바구니가 본래는 다른 형태의 그림이었다는 것이 엑스레이 촬영을 통해 밝혀졌는데, 이를 계기로 달리의 이 책은 재조명 받게 된다. 달리는 위풍당당한 모습으로 자신이 진작부터 밀레의 ‘만종’에서 강렬한 죽음의 기운을 예감했다고 말하고 다녔다.

하지만 달리가 ‘만종’에 편집증을 보였던 것은 그것에 숨겨진 어떠한 진실을 강렬히 예감했기 때문이 아니었다. 달리는 ‘만종’과 일종의 대결을 벌이고 싶었다. 자신의 내면에 숨겨진 강렬한 욕구와 망상, 그리고 편집증적인 의지가 원작의 본래의 의미와 상관없이 원작을 압도할 수 있는가를 시험해 보고 싶었던 것이다. 이 대결을 ‘이성과 비이성의 대결’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것 같다. 달리는 자신의 비합리적이고 주관적이며 일방적인 망상 역시 체계적인 비평의 수단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밀레의 ‘만종’이 주는 경건하면서도 풍성한 뉘앙스를 좋아했고, 자기 자신으로부터도 그처럼 깊고도 넓은 그 무언가를 끌어올릴 수 있다고 믿었다.

사실 필자는 달리가 주장한 편집증적인 비평 방식이 그리 유효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한 개인의 망상은 그 개인의 망상에 그칠 뿐, 보편적인 진실이 되기는 어렵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달리가 책을 집필했던 것도 그가 벌였던 수많은 허무맹랑하고 충격적인 해프닝 중 하나였다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예술가가 전혀 가능하지도 않고 현실적이지도 않은 주장을 고수하며 사람들의 존경받는 위대한 화가의 명작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수없이 다시 그렸던 그의 시도를 매우 높게 산다.

그는 예술가였으니까 그리해도 괜찮았다. 예술가도 아닌 주제에 자신의 욕망과 망상을 보편적 진실이라고 우기며 세상을 탁하게 만드는 이들이 득시글거리는 세상 속에서 달리의 해프닝은 오히려 귀엽게 느껴지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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