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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시산책]유배일기

 

 

 

유배일기

                                     /허수경

안개의 쓸쓸한 살 속에 어깨를 담그네

유배지의 등불 젖은 가슴에 기대면

젊은 새벽은 이다지도 불편하고

뿌리 뽑힌 꿈의 신경이

막막한 어둠 속에서 부서지네

그러나 우리는

우리가 가장 그리워

쫓아낸 자의 어머니가 될 때까지

이 목숨 빨아 희가 입을 때까지

- 허수경 ‘슬픔만한 거름이 어디 있으랴’ / 실천문학사·1988

 

 

허수경(1964∼2018)의 ‘유배일기’는 실존적 현실이 아니라심리적 현실에서 재현된다. 첫 시집(1988년)에 실린 그의 내면은 자발적 유배성의 시적 공간으로 활용된다. 유배지는 ‘낙향’의 의미를 내포하므로, 나의 ‘꿈’은, 나의 현실보다 좀 더 어려운 거처로 퇴거됨을 암시한다. 나는 왜 나의 꿈과 분리되어야 하는가. 꿈의 잉태에 기준으로, 이전의 나와 이후의 나는 동거할 수 없는 성질을 가졌기 때문이다. 다시 말하면, 주체는 ‘유배’의 결단을 내릴 만큼 ‘대(大)소명’을 받은 자이다. 운명처럼. 나와 나의 꿈은 분리되는 고독감을 감수한다. 하지만 나로부터 이주한 나의 꿈은 ‘안개’에 갇혀 있다. ‘안개’는 ‘꿈’의 유배됨과 동시에 좌절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막막한 어둠 속에서’ 부서지는 꿈의 신경 올. 하지만 유배지의 불충분성은 시적 주체가 꿈에 집중하는 태도에 기여하게 한다. 주체는 ‘쫓아낸 자의 어머니가 될 때까지’ /이 목숨 빨아 희가 될 때까지. 세속(나)과의 결절을 선언한다. 목숨을 걸고 전진해야 하는 일. 선택한 자인가. 선택받은 자인가. ‘우리는/우리가 가장 그리워’ 나로부터 망명 온 자들./박소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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