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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 보는 세상]관객을 가르치려는 겁니까?

 

 

 

 

 

역사 속의 봉오동전투는 독립군의 승리로 기록하고 있지만 영화 ‘봉오동전투’의 흥행은 실패로 끝났다. 지난 8월 7일 개봉한 이 영화는 최종 478만여 명을 기록했는데, 개봉전 예상은 ‘1천만’을 넘기고도 남을 정도였다. 실제로 그럴 수준이었는지, 홍보를 앞세운 바람잡이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500만 명을 넘겨야 제작비를 회수하는 수준을 감안하면 손익분기점에도 미치지 못한 것이다. 제작자나 감독은 관객을 설득하는 흥행이 일본군을 상대하는 전투보다 더 어렵다는 사실을 절감했을 터이다.

큰 기대를 걸었다가 모래 씹은 표정을 지은 경우는 또 있다. 한글 창제 과정을 소재로 다룬 ‘나랏말싸미’도 스타급 배우를 앞세우고, 연기력 좋다는 배우들을 좌우로 배치했지만 역사왜곡이라는 논란을 일으켰을 뿐 흥행에서는 처참한 결과로 마쳤을 뿐이다. 100만 관객에도 미치지 못했다.

영화는, 검증된 사실을 바탕으로 역사를 해석하는 학술작업이 아니어서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는 작업이 얼마든지 가능하다. 왕이 갑작스런 변고로 정상적 정무를 살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몰래 가짜 왕을 세운다는 ‘광해-왕이 된 남자’나 관상을 기막히게 잘 본다는 소문 덕에 궁에 들어갔다가 권력 싸움에 휘말려 파란곡절을 겪는 어느 관상가의 수난을 묘사한 ‘관상’, 떠돌이 광대 패가 궁중에 들어가 잠깐의 호사를 누리지만 굽이굽이 곡절 끝에 결국 파탄을 겪는다는 ‘왕의 남자’도 역사적 사실과는 거리가 멀다.

임진년 일본군이 조선을 침공했을 때 적을 물리치는 이순신 장군의 활약을 그린 ‘명량’, 청나라 군대의 침공으로 시작된 병자호란(1936∼1637) 때 남한산성으로 피난했다가 결국 항복에 이르는 과정에서 찬반 양론으로 갈려 내분하는 신하들의 옥신각신을 소재로 삼은 ‘남한산성’처럼 역사적 사실에 충실했다는 영화들조차 대강의 틀은 사실을 전제하면서도 과정의 전개나 각 인물들 간에 주고받는 대사 같은 것들은 가상의 재현이다. 실재 여부를 알 수 없는 가상의 인물을 설정하거나 사건을 삽입해서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도 한다. ‘봉오동전투’나 ‘나랏말싸미’도 그런 경우다.

MBC의 ‘이몽’이나 SBS의 ‘녹두꽃’ 같은 드라마 역시 ‘먹을 것 없이 소문만 요란한’ 잔치로 끝난 경우에 든다. ‘이몽’은 일제 시절 독립운동을 했던 의열단 단장 김원봉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경우다. 김원봉은 넓은 의미로 독립운동가라고 할 수 있지만, 아나키스트적인 행동과 해방 후 월북해 북한정권의 고위직을 지내는 등의 이력 때문에 대한민국 정부는 그를 독립운동가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그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설정하고 독립운동의 영웅인 것처럼 묘사했으니 논란이 벌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 사회주의 운동가를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려는 이미지 세탁의 과정이라는 것이다. 100억 원 이상의 제작비를 들인 대작이고, 소재가 파격적이라는 점에서 논란을 일으키기는 했지만, 시청율은 4∼5% 수준에 그쳤다. 의미 있는 반응을 얻지 못한 채 제작비만 날린 셈이다.

‘녹두꽃’은 동학난, 동학농민운동, 동학농민항쟁, 동학농민혁명, 동학혁명 등으로 불리며 역사적 전개 과정에 대한 평가가 다양한 1894년의 농민 봉기 사건을 역사 드라마로 재구성했다. 형제가 농민군과 진압군으로 갈려 갈등하는 내용과 청춘 남녀의 애절한 사랑을 배열하기는 했지만, 통괄하는 메시지는 부당한 국가권력에 저항하는 농민(백성?)들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지지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 드라마 역시 시청률은 예상에 미치지 못했다.

왜 이런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사람이 적은가라는 이유를 찾기는 어렵다. 다만 자연스런 흥미보다는 특정한 목적을 정해놓고 외치는 주장 같은 느낌이 강하다는 인상은 강하다. 요즘 말로 하면 이른바 제작자나 감독의 갑질이다. 그런 부분들에 대한 반감이나 불편함이 관객(시청자)의 외면을 받은 것은 아닐까. 영화던 드라마던 관객(시청자)을 조금 더 친절한 마음으로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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