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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에세이]일곱 송이 장미

 

순덕이는 나의 고향 친구이다. 그런 순덕이를 서울에서 우연히 만났다. 우린 그때부터 부부가 함께 어울렸다. 어언 우리 나이도 오십 중반에 들어섰다.

그런 어느 날 청천벽력 같은 전화 한 통이 걸려 왔다. 친구가 암으로 입원했다는 연락이 왔다. 나는 병원으로 달려갔다. 친구는 나를 보며 하염없이 울었다.

“난 곧 죽을 거야. 죽기 전에 내 소원이 뭔 줄 아니? 결혼기념일도 내 생일도 모르는 저 멍텅구리 남편한테서 장미꽃 한 다발을 받고 싶어”

친구는 목을 돌리고 꺼억꺼억 울었다. 그날 저녁 나는 친구의 소박한 꿈을 그의 남편한테 넌지시 말했다. 그 며칠 뒤였다.

병원에 들렀더니 병실 벽에 꽃 그림이 그려진 종이 한 장이 붙어 있었다.

“우리 서방님이 날 보라고 장미꽃을 그려 붙였어”

친구는 희미하게 웃었다.

“저게 네 눈엔 장미같이 보이니?”

나도 웃었다. 내가 보기에도 그건 장미꽃같이 보이지는 않았다. 그러나 서툰 그림 솜씨로 아주 정성스레 그린 꽃 그림이었다.

나는 그림 밑에 쓰인 친구 남편의 글씨들에 눈이 갔다. 사인펜으로 정성 들여 또박또박 쓴 글이었다.

여보, 나, 가진 거 없어/ 땅도 없고 돈도 없소/ 오직 당신 사랑하는 이 마음/ 내 마음속 일곱 송이 장미를/ 그대에게 바치오./ 여보,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 하였건만/ 난 그대에게 준 것이 없어/ 정말 미안하오./ 사랑해, 여보.

그때 순덕이가 말했다.

“얘? 아무리 봐도 그거 장미가 아니라 찔레꽃 아니니?”

나는 눈을 흘기며 친구에게 말했다.

“얘도? 남편이 장미라면 장미라고 알아”

마침내 친구는 퇴원을 했다. 나는 틈만 나면 친구 집으로 찾아갔다. 문을 열고 거실로 들어가는데 친구는 응접 의자에 앉았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그날따라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목이 말라 주방의 냉장고로 향하다가 거실 벽에 걸린 액자에 눈이 갔다. 걸음을 멈추고 잠시 그 액자 속 그림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등 뒤에서 친구의 소리가 들렸다.

“그 그림? 병실에 걸려 있던 우리 그이 찔레꽃 그림이야”

“얘는 아직도 찔레꽃이야? 일곱 송이 장미라는데”

내 말에 친구는 웃으며 말했다.

“그래, 장미야. 그 일곱 송이 장미? 내 생전 남편한테 받아본 최고의 선물이거든. 그래서 우리 집 가보로 지니기로 했어”

그녀는 깔깔거리며 웃었다. 그럴 땐 병 든 모습이 아니었다. 내가 냉장고 문을 열고 물병을 들고 돌아서는데 친구가 또 말했다.

“얘, 사림아? 우리 시골 한번 가자?”

“나, 가보고 싶어. 찔레꽃 붉게 피는 남쪽 나라 내 고향” 친구는 유행가의 한 구절을 시를 읊듯이 말했다.

“그래, 가자. 네가 기운만 차린다면 내일이라도…. 찔레꽃 붉게 피는 내 고향 합천 땅으로”

우린 함께 웃었다. 그날따라 친구의 눈에 생기가 돌고 활기에 차서 움직였다. 나는 모쪼록 밝은 마음으로 친구 집을 나왔다. 전동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데 문득 친구 남편이 그린 그림 속의 문구가 떠올랐다.

‘사랑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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