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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주성

/백석


산턱 원두막은 뷔였나 불빛이 외롭다
헝겊심지에 아즈까리 기름의
쪼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잠자리 조을든 문허진 성터
반디불이 난다 파란 혼(魂)들 같다
어데서 말있는 듯이 크다란 산새 한 마리
어두운 골짜기로 난다

헐리다 남은 성문이
한울빛 같이 훤하다

날이 밝으면 또 메기수염의 늙은이가
청배를 팔러 올 것이다.

 

 

 

 

시인이 고향마을의 유산과 향수와 정신이 잘 담겨진 이 시는 1935년 조선일보에 발표해 백석이 시단에 데뷔한 작품이다. 고향마을은 누구나 떠나있으면서도 주검의 목전에 다다른 계절의 상황들이 닥치게 되면 수구초심(首丘初心) 같은 고향으로 동경하는 게 인간의 심리다. 시인역시 정주성의 밤에서 어두운 불빛을 보고 자아를 꺼내어 곱씹어 성찰한다. 허름한 등잔불의 풍광들이 외처롭게 느껴지는 고향마을 산하의 현실과 자신의 암담한 처지를 읽을 수 있다. 고향을 버리거나 성취하고자 했던 연민과 향수는 자신이 처한 그리움자락의 서러운 마음들이다. 여기서 무너진 성터는 쇠락한 역사의 한 장으로 허망한 감정들을 담았다. 시인은 폐허가 된 정주성에서 밤하늘에 비친 고향의 숨결들로 날이 밝으면 청배를 파는 늙은 사람들이 삶을 연명하는 모습과 남아있어야 하는 사람들은 다 어디로 가고, 허무한 성터에 남은 쓸쓸한 회상으로 근원적인 의식을 질문하는 서사(敍事)를 읽게 한다./박병두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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