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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슬람에 있어서 단식은 하나의 종교의식이다. 이슬람 신자(무슬림)면 지켜야 되는 5대 의무 중 하나다. 이슬람력으로 제 9월 달을 라마단이라 하여 한달간 단식을 행한다.
이슬람에서 단식을 의무화하는 것은 하나님 경배의 의미도 있지만 단식을 통해 절약된 양식과 물질을 가난한 자에게 희사한다는 분배의 의미도 있다.
이같은 성스러운 의미를 갖고 있는 단식이 근대에 들어와서는 투쟁의 한 방편으로 이용되고 있다.
단식투쟁의 근원은 아무래도 19세기 말 인도의 간디를 꼽을 수 있다. 단식은 비폭력 투쟁의 수단이었다. 1924년 간디는 영국의 식민정치에 저항했던 힌두교도와 이슬람교도가 협조 관계를 깨자 이를 화해시키려 3주간 단식을 하여 두 교단을 화해시켰다.
비폭력 저항의 대명사가 된 단식투쟁은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1920년대 초 광주에서는 학생들의 대일 투쟁이 격화되었다. 특히 1926년 광주역 6·10만세사건은 광주 학생 독립운동으로 발전되었다. 이 사태로 광주고보·광주농업·광주사범·광주여고보 등 학생 1천400명이 검거되었고 이중 480여명이 구속되었다. 이들 구속된 학생들은 광주교도소의 인간이하의 대우에 항의하고 독립을 요구하며 단식투쟁을 벌였다. 3일 내지 10일간씩을 단식하여 수많은 학생들이 쓰러져 실려 나갔다.
근대에서는 80년대 신군부에 항의하는 신부 재야 인사 등의 단식이 이어져 6·10 민주화 운동으로 발전했다. 이후에는 김영삼·최병렬·정동영 등 정치인들과 노조의 단식이 줄을 이었다. 흔하다 보니 관심의 중심에서 멀어진 상태다.
며칠전 여인국 과천시장이 기무사 이전 백지화를 요구하며 단식투쟁에 들어 갔다. 반대입장의 홍보치고는 만점짜리지만 대상이 어설프다. 滿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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